김찬숙 <본지 집필위원>
의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사람들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더 오래, 그리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너무 과학에만 치우쳐 신체와 정신을 따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아졌다.
어떤 사람도 자신에서 질병만을 따로 분리해서 다룸으로써 자신이 고장 난 생물학적 부품으로 인식되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환자는 누구나 의사가 대등한 관계 속에서 자신의 고통 받는 영혼에까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밀려 있는 예약 환자들이 많은 상황에서 의사가 환자 각자에 대한 폭넓은 접근을 하기란 힘들겠지만 치료의 비밀은 환자에 대한 관심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증상들을 열심히 설명한다.
그리고 버나드 라운 박사의 ‘의사는 한 인간의 사회사와 문화사의 사건들이 얽혀 있는 연극의 관객이다’라고 한말을 떠올린다.
일년 중 제일 더운 계절이 됐다. 우리는 각자 입장에서 자기중심으로 사물을 받아드린다. 그러므로 사람에 따라 이 여름이 바캉스의 즐거움이 되기도 하고 휴식과 재충전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혹자에게는 죽고 싶은 계절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요즘 유난히 자살에 대한 뉴스가 많은 것 같다.
그리고 또 노약자에게는 더운 여름이 위험한 계절이기도 하다. 사실 장수하시는 노인 분들이 삼복더위에 많이 돌아가신다. 그래서 자식들 뒷바라지와 노인을 모시는 새중간에 있는 장년층은 바캉스 여행길에서도 안절부절이다.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인생 연극 제4막이 많이 길어졌지만 그 만큼 할일도 많아졌고 갈등도 많아졌다. 그래서 동시대를 함께 사는 사람들, 심지어 한 가족 안에서도 문화충돌이 일어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의 삶이 가지는 고귀함에 대한 존경심을 조금만 갖는다면 근본적인 갈등은 해소될 수 있다. 가족간의 세대차이, 사회계층간의 위화감, 상대간의 불만 등 모든 면에서 조금 우위에 있는 사람이 먼저 이해하려고 하면 문제는 간단할 것이다.
환자에겐 의사가, 부모는 자식을, 위정자가 국민을,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선생님이 학생을... 이렇게 위에서 아래로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사회가 돌아가면 살기 편한 세상이 될 것 같다. 그러나 요즘 우리사회는 모든 면에서 너무 각박하게 돌아간다.
정치, 사회, 교육, 환경,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자기 몫을 챙기느라 너무 자기 목소리만 외쳐댄다. 진정한 평등사회는 각자 자기가 설 자리를 잘 알아서 위계질서가 제대로 확립될 때에만 이뤄진다.
그러므로 아무리 좋은 세상이 됐어도, 나이든 어른들은 옛날을 그리워한다. 조금 가난했어도, 조금 불편했어도, 조금 시야가 좁았어도, 그리고 조금 단명했어도 지나간 세기가 오히려 살기 좋았던 것 같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어떤 이론을 내세워도 발전은 좋은 것이다. 의학의 발전은 우리의 생을 연장해 주었고 과학의 발전은 우리의 생활을 풍요롭게 해주었으며 그래서 문화의 발전으로 이어진 현실은 우리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해 주었다.
다만 우리가 이렇게 좋은 세상을 진정 행복하게 누릴 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의학의 발전이 고통 받는 신체의 생존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고귀한 삶이 하루라도 더 즐겁게 영위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120년을 살 수 있다고 과학은 말한다. 그렇게 되면 20년 아니 30년을 더 얻은 우리의 후손들은 지금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세상에서 물질만이 아니라 영혼까지 행복한 생활을 할 것 같다. 이제 우리 기성세대는 너, 나, 할 것 없이 그런 토대를 만들어 주는 것으로 보람을 느낄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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