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시론/배광식 본지 집필위원

  • 등록 2003.09.0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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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것과 헌 것

 

길거리를 지나다니다 보면, 청바지나 청치마의 실오리가 풀리고 구멍이 뚫려 살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옷을 입은 젊은이들을 많이 보게 된다.
얼핏 보면 너무 오래 입어서 닳고 닳아서 그렇게 된 것처럼 보인다. 팔꿈치에 천을 덧대서 기운 옷을 입고 다니기도 한다.
또한 허리춤이 넓은 바지를 허리띠 없이 엉덩이에 겨우 걸치게 하고 바지단을 밟고 다녀서 헤지게 하기도 한다.
요즈음은 머리에 염색을 하지 않고 검은 머리 그대로인 젊은이를 보면 이상해보일 정도로 모두 머리에 물을 들이고 다닌다.
머리를 빡빡 밀고 다니는 사람도 꽤 많다.
내가 학생인 때는 장발이 유행이었고, 많은 학생들이 장발단속한다고 쥐뜯어 먹은 듯이 머리를 깎아놓는 경찰이나 선생님을 피해 숨어다니기도 했고, 미니스커트를 단속한다고 자로 무릎 위 몇 센티미터까지 올라갔나를 재는 경찰을 피해 달아나는 여대생을 보는 것도 흔한 일이었다.
청바지를 사서 멀쩡하고 깨끗한 것을 몇 번 삶고 빨아서 물색이 바래도록 해서 입고 다니기도 했다.
지금도 상투를 틀고 갓을 쓰지 않으면 나들이를 못하는 청학동 사람들이 이런 것을 어떤 눈으로 볼까 생각해본다.
하기는 복식에 대한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 조상들의 저고리 길이도 짧아졌다가 길어지기도 하는 등 많은 변화와 유행을 겪어온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젊은이들에게 설빔과 추석빔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옳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백결(百結) 선생의 누더기와 거문고로 떡방아소리를 냈던 사연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석산양말이 나오기 전에 뚫어진 양말을 기워 신고 다녔다는 것을 아는 젊은이는?
소비가 미덕인 사회에서 소비자가 옷을 사서 실오리를 풀고 입는 것이 미덕인 것을 넘어, 이제는 소비자가 실오리 푸는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아예 구멍 뚫리고 실오리 풀린 옷을 파는 친절을 베풀고 있다.
새 것이 좋은가? 헌 것이 좋은가?
수석이 취미인 사람은 갓 주워온 새돌보다는 어느 정도 길이 나고 손때가 묻은 고태가 나는 돌을 정겹고 세월이 느껴진다고 좋아한다.
모든 것이 빠른 속도로 스쳐가고, 일회용품화하며, 점점 낯익고 정든 것을 접하기 어려운 급변하는 사회에서 헤지고 때 타기 전에 버리고 새옷을 사입는 세대들은 일부러 실오리를 풀지 않고는 옷에도 정을 들일 시간이 없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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