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권력(상)
‘말과 사물’ 및 ‘지식의 고고학’에서 푸코는 대상과 주체가 직접 관계 맺는 전통 철학의 도식을 종식시키고 새로운 사유틀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지나친 언어중심주의라는 또 정적인 사유라는 한계를 드러내면서, 푸코는 "계보학"이라는 또 다른 길을 찾아 나선다.
‘감시와 처벌’(1974)은 고고학에서 계보학으로 넘어가는 작품이다. 이 책의 내용과 방법은 ‘말과 사물’이나 ‘지식의 고고학’보다는 차라리 ‘광기의 역사’에 더 가깝다. 푸코는 이 책에서 근대 훈육 사회를 본격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푸코는 전통적인 군주권이 지배하던 시대, 권력이 보다 직접적이고 잔혹하게 행사되던 시대와 새로운 형태의 권력 즉 그가 ‘통치성(gouvernementalite)’이라고 부른 형태의 권력이 간접적이면서도 합리주의적이고 교모하게 행사하는 시대를 대조시킨다.
예컨대 고전 시대의 처벌은 공개적이었다.
처형은 사람들이 모인 저자거리에서 행해졌으며 또 매우 잔인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프랑스 대혁명을 고비로 인권 사상이 도래했고, 이제 처벌은 은밀하면서도 집요하고 또 계산적이 된다.
체형(體刑)보다는 감금형이 일반화된다. 죄의 양은 감금의 시간의 양으로 측정된다.
죄인의 몸을 직접적으로 벌하기보다는 오히려 마음을 벌하게 된다.
이것이 ‘훈육’의 개념이다.
특히 푸코는 감금의 여러 형태들을 분석했다.
이것은 ‘광기의 역사’를 직접적으로 잇고 있는 것이다.
푸코는 특히 ‘파놉티콘’ 구조에 대해 분석했는데, 이것은 흔히 ‘원형 감옥’으로 번역된다.
이것은 감시자가 없어도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를 감시 받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건축 구조이다.
푸코는 이 구조가 근대적인 훈육장치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감시 시설에 있어 기본적인 요소들은 서로 치환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각각의 요소는 어떤 계열 속에서 그것이 차지하는 위치에 의해, 또 그를 다른 요소들로부터 분리해 주고 있는 간극에 의해 규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감시 시설에서 기본 단위는 소속 분야(지배의 단위)도 장소(소재의 단위)도 아니고 서열[위상학적인 순서]이다.
곧 어떤 종류나 등급 속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위치이고, 횡렬과 종렬이 교차하는 지점이며, 끝에서 끝까지 순차적으로 통과하는 일련의 간격들 속의 간격이다. 훈육은 서열의 기술이며 배열의 교체를 위한 기술이다.
그것은 신체를 정착시키는 것이 아니라 배분하고, 어떤 여러 관계의 망 속에 그 신체를 순환시키는 정위에 의해 각 신체를 개별화하는 것이다.
‘감시와 처벌’
푸코는 권력에 대해서 중요한 통찰을 제시한다.
권력은 반드시 억압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산적이라는 것이다. 즉 권력은 일종의 능동인(能動因)인 것이다.
이제, 권력은 ‘배제한다’, ‘억압한다’, ‘억제한다’, ‘검열한다’, ‘떼어놓는다’, ‘은폐한다’, ‘숨긴다’ 등 권력의 효과들을 부정적인 용어들을 통해 기술하는 것을 끝내야 한다. 사실 권력은 생산한다.
그것은 현실적인 것을 생산한다. 그것은 대상들의 영역과 진리의 의식들을 생산한다.
‘감시와 처벌’
권력 관계는 다른 유형의 관계들(경제적 관계, 인식 관계, 성적 관계)로 표면화되는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에 내재하고 따라서 그러한 관계들에서 생기는 분할, 불평등, 불균형의 직접적 효과이며, 거꾸로 이러한 차등화의 내적인 조건이다.
권력 관계는 단순한 금지 또는 갱신의 역할을 지닌 상부구조의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작용하는 거기에 직접적으로 생산적인 역할을 한다.
‘감시와 처벌’
<1205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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