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의 원장 이야기 치과역사(72)]명성황후

2006.03.02 00:00:00


명성황후가 최후를 마친 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총독부의 오른쪽 골목길의 작은 입구에 들어가면 경복궁터가 있다. 화단이 만들어져 있는 것 외에 궁전에는 초석과 탁수가 있는 연못만이 있고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광대한 지역의 최북단에 조선왕조의 주궁 흔적과 작은 정원이 있고 표시패가 있다. 나는 숙연한 이 땅을 차분히 걷는 것이 좋아서 가끔 갔다.
조선왕조의 왕비로서 정치적으로 능력을 발휘했고 청일전쟁에는 대원군을 배척했고, 일본과 중국을 능란하게 농락하고 일본의 승리를 알아서 친로 배일로 급히 변하였다.
대원군은 당시의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三蒲梧樓) 장군과 모의하여 민씨 일가를 일소하고 한일장사를 자객으로 왕궁에 보내어 우물가에서 명성황후를 살해한다. 때는 1896년이었다.(이는 일본인 자객에 의한 것이다. 역자)


자객은 즉 경성 혼마치(本町) 입구 미츠꼬시(三越) 백화점 터에 있던 일본공사관으로 도망하여 밤에 비밀리에 보위되어 인천에 도착하여 일본 배로 탈출했다. 문제가 되어 미우라 고로 장군과 함께 한때 히로시마에 구금되었다. 그때의 명성황후 살해 현장이 어느 우물이었는지 불분명하다.
영고성쇠(榮枯盛衰)는 사람의 일상사라고 하면서도 경복궁의 우물가에 오면 측은한 정이 가슴에 파고들어 고개를 숙여 조용히 합장한다.

 

백송


오카다 시로(岡田四郞)의 빈약한 식물학의 지식으로 가지의 색에 의한 분류는 적송과 흑송 만이 있다. 경성에서 별도의 백송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총독부의원 쪽 1정 정도 앞에 전차에서도 보이는 곳에 한그루 있고 3∼4그루 모여 있는 조선인 저택을 본 적도 있으나 장소를 기억할 수 없다. 처음 들었을 때 하얀 이끼라도 붙어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까이 가서 손으로 만져보니 이끼가 아니다. 수액이 나와 나무표면 그대로 하얀 것이다. 정말로 자작나무와 비슷하다.


이것에는 무언가 있다. 전설인가, 인연되는 이야기가 있다고 예측하여 여러 방면의 사람에게 물어보았지만 아무도 모른다. 그냥 북쪽 조선에는 이런 종류의 소나무가 더 많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추운 지방 산으로 경성이 그 남쪽이라는 것인가.


이 백송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사세보시(佐世保市)의 효행 대나무가 생각난다. 소나무와 대나무가 관계없는데 머리에 떠오른다. 사세보시 후쿠이시(福石)관음(觀音)경내의 정면석단 좌측의 한그루가 효행대나무이다. 꽃이라면 4계절 핀다고 할까, 이 대나무에는 연중계속 순이 나오는 것이다. 순의 전설에는 유명한 것이 있는데 효행대나무는 순이 연중 있는데도 그 전설도 없었다.
출처: 한국근대치의학교육사(출판: 참윤퍼블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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