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의 원장 이야기 치과역사(79)]씨름부의 신설

2006.04.20 00:00:00


전쟁도 심하게 패퇴기가 됨에 따라 각종의 통제가 엄해지고 많은 운동종목이 발전적 해체의 괴로움을 당했다.


야구를 비롯해 대부분이 그러했다. 카키미 요죠(垣見庸三)는 일본 씨름을 좋아했고, 이 종목은 전투력고양에 플러스가 되는 것이었다. 우리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에는 없었기 때문에 한번 씨름부를 새롭게 만들어 보자고 두드러진 선수를 모아 전문대학대회에 출장시켜 보았다. 예상외로 상당히 우수한 성적이었다. 그리하여 힘을 얻어 교정에 씨름판을 만드는 일을 계획했다.


즉 재정원조의 일부를 풍운당의 사까이 코오이찌(酒井好一)에 의뢰하여 쾌히 승낙을 얻었다. 마침 병원에 근무하고 있던 타카바타케(高烟)의 부모님이 씨름판 건설정도의 일이라면 할 수 있다고 하여 4기둥도 당당한 씨름판을 교정의 한구석에 완성하였다.(1943년경) 그 후 전 조선대회에서도 우승을 겨루는 좋은 성적을 올렸지만 2년도 지나지 않아 종전이 되어버렸다.


시 읊기 동호회 탄생


이것도 정신강화에 일조한다고 생각하고 용산에 있는 한 선생에게 출장 지도를 의뢰한 결과 유지를 모으고 3층의 계단교실에서 주1회 “색은 냄새가 없지만”의 기본조에서 지도를 받아 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때는 1943년 무렵이었다.


직원 중에서도 요코다 세이죠(橫田成三)·마키야마 마사후미(牧山正文) 등도 동조하여 참가해 한창일 때는 교실에 8할 정도의 회원이 모였다. 이러는 사이에 능숙한 사람이 나타났다. 특히 가네쿠라(鎌倉), 하시모토(橋本), 츠루미(鶴見)의 3명(모두 16회생)은 두드러져 전조선 학생대회에 출장한 결과 개인과 단체전 모두 우승한 일이 있었다.
출처: 한국근대치의학교육사(출판: 참윤퍼블리싱)

 

관리자
Copyright @2013 치의신보 Corp. All rights reserved.





주소 서울시 성동구 광나루로 257(송정동) 대한치과의사협회 회관 3층 | 등록번호 : 서울,아52234 | 등록일자 : 2019.03.25 | 발행인 박태근 | 편집인 이석초 | 대표전화 02-2024-9200 FAX 02-468-4653 | 편집국 02-2024-9210 광고관리국 02-2024-9290 Copyright © 치의신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