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시론/이안희]가진 자의 도리

2006.05.15 00:00:00

이안희 <본지 집필위원>


노자에 ‘부귀이교 자유기구 공수신퇴 천지도(富貴而驕 自遺其咎 功遂身退 天之道)’라는 말이 있다. 이는 ‘부유하고 귀한 처지 자체가 교만함이니, 이는 스스로 허물을 남긴다, 공이 이루어지면 몸은 물러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늘의 도리이다’라는 뜻이다.


나는 결코 부유하거나 귀한 사람은 아니지만, 왠지 이 말을 접한 순간 신선한 깨달음이 오면서 한동안 내 안에서 화두가 되었다. 치과의사로서 이십여 년을 지내다 보니, 나의 의도나 능력과는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내가 속한 작은 사회 안에서 가까스로 평균 수준을 벗어난 듯 싶기는 하지만, 때때로 그것이 내게 작은 부담이 되기도 해서, 과연 내 위치에서 어떻게 잘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나름대로 진지하게 고민을 해 보곤 한다.


어찌됐건 이 치열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래도 아주 조금이나마 가진 자의 입장에서 살아 갈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며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진자로서 그에 걸맞게 잘 살아가는 일은 정말 힘든 일 같다. 우리가 속한 사회 안에서 이웃, 친구, 심지어 가족 안에서도 사람이 모인 모든 곳에서는 조금 더 가진 사람과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사람의 갈등 구도는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그것은 반드시 가진 자와 덜 가진 자 사이에 존재하는 숙명적인 검은 그림자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노자의 말처럼 어찌할 수 없는 이 태생적인 적대감을 어떻게 극복하거나 혹은 줄일 수 있을 것인가? 찾아보면 그 방법이야 많겠지만, 겸손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나눔이야말로 그 중의 가장 핵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 세상 그 어느 부도 다른 이의 도움 없이 혼자 이룰 수는 없다. 자신의 부에 누군가의 땀방울이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저절로 겸손해지고,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으며, 함께 나누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가진자로서 이 세상을 잘 살아가는 일이 훨씬 어려운 반면, 가졌기 때문에 그 어려움을 만회할 기회나 능력이 오히려 많이 주어진다. 그것이 바로 선물이며 축복이 아닐까 싶다.
신이 부자를 만들 때, 자신이 가진 부를 누리는 복을 주신 것이 아니고, 그것으로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복을 주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나보다 많이 가진 자는 내게 있어서 부러움의 대상이다.
올 초 삼성이 사회복지기금 헌납을 발표한 뒤 현대, 외국계펀드에서도 기부금계획을 발표했고, 정부의 양극화 해소 방안 정책 이후, 다른 대기업과 중소기업에서도 다양한 사회환원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있다.
물론, 그것이 다양하게 연루된 각종 비리들을 무마시키기 위한 의도에서 행해졌거나, 정부정책에 울며 겨자먹기로 협조한 것이라 해도, 어쨌든 적지 않은 물꼬가 터졌다는 생각이 들어서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싶다.


사실 자신들의 자선단체를 직접 운영하면서 사회환원을 조직적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미국 부자들에 비해 우리나라의 부자들은 그간 너무나도 자선에 인색했다. 일회성이 아닌, 체계적인 사회환원사업이 진지하게 실천돼야 할 것이고 지금의 사회적인 분위기를 볼 때, 이제는 그렇게 되리라고 믿어본다.
노자의 말처럼, 부 자체가 경계심을 유발시키므로 그들이 아무리 많이 베풀어도 부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에게 그럴듯하게 보이거나 인정을 염두에 두는 행위가 아니고, 그것이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한 신성한 의무이며 도리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최근 자주 등장했던 양극화라는 말이 이 사회의 양극화를 오히려 부추기는 듯해서 불만이다.
고대 로마의 ‘노블리스 오블리제’처럼, 어느 사회에서나 그랬듯이 가진 자의 성숙한 역할은 늘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 같다. 경직된 사회 구도를 지도자적 입장에서 선도해 풀어가는, 도덕적인 지표가 되고, 부의 건전한 모델이 되고, 더 나아가 이 사회의 자존심이 될 수 있는, 진심으로 존경하고 싶은 멋진 부자들이 점점 많아지기를 기대한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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