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시론] ‘도’ 넘은 코디네이터 역할 / 최재갑

2006.07.31 00:00:00

얼마 전 어느 지방에서 개최된 치의학 관련 종합 학술대회 및 전시회에서 아주 충격적인 일을 경험하였다.
최근에 일부의 치과병·의원에서 고용하고 있는 소위 ‘코디네이터’의 역할을 소개하는 코너를 참관하면서 ‘코디네이터’가 하는 일이 위법적인 수준에 이른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신환이 오면 ‘코디네이터’가 담당 치과의사(원장)보다 먼저 예진실에서 병력조사를 하고 방사선사진을 촬영한 후 치료계획까지 수립해서 비로소 담당 치과의사에게 환자를 넘겨준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치과의사는 ‘코디네이터’가 수립해 준 치료계획에 따라 치료만 하면 된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일은 일부 대형 치과병원에서는 ‘코디네이터’가 수립한 치료계획을 담당 치과의사가 임의로 변경하는 것조차 어렵도록 병원의 분위기가 만들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코디네이터’의 설명과 담당 치과의사의 설명이 다르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본인이 알고 있는 바로는 우리나라의 의료관련 법규의 어디에서도 ‘코디네이터’에 관한 규정은 없다. ‘코디네이터’의 직무가 어떤 것인지, ‘코디네이터’가 되기 위해서 어떤 자격과 면허가 필요한지 전혀 법적인 근거가 없다. 그런데 이러한 무자격의 사람들이 어떻게 환자의 병력을 청취하고 방사선사진을 촬영하고 치료계획까지 수립할 수 있단 말인가?


의사(치과의사)의 역할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병을 진단하는 것이다. 병을 제대로 진단해야만 올바른 치료를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진단의 과정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는 치과대학에서 공부를 해 본 사람들은 모두 다 안다. 치과대학 공부의 거의 절반 이상이 병을 진단하기 위한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이다. 또한 진단이 잘 못되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다시 말 할 필요도 없다. 병력청취는 진단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과정이고, 진단의 성패는 병력청취에서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병력청취는 또한 의사-환자 관계(rapport)의 수립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이와 같이 중요한 병력청취를 ‘코디네이터’에게 맡긴다는 것은 법적인 문제 이전에 치과의사의 양식에 관한 문제이다.


그뿐만 아니다. 방사선사진의 촬영은 반드시 담당 치과의사의 판단과 지시에 의해서 이루어져야만 한다. 또한 방사선사진의 촬영은 질병의 진단과 치료계획의 수립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경우에만 시행되어야 하고 촬영부위와 촬영방법, 그리고 주의사항에 관해서는 반드시 담당 의사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담당 치과의사가 보기도 전에 방사선사진을 미리 촬영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명백한 불법 의료행위에 해당하는 것이다.


‘코디네이터’가 치료계획을 수립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치료계획의 수립은 최선의 치료결과를 얻기 위해서 매우 중요한 과정이며, 병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예후에 대한 판단을 바탕으로 환자의 전신건강 상태, 심리적 요인, 사회경제적 요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이루어져야만 한다.

 

치료계획의 수립은 인간의 행동과 의료 분야에서 다양하고 심도 있는 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의료의 종합예술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치료계획의 수립을 ‘코디네이터’에게 맡긴다는 것은 스스로 치과의사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그런데 이와 같은 ‘코디네이터’의 불법적인 행위가 일부 치과의사의 방조와 묵인 하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우리를 더욱 슬프게 만든다. 특히 일부의 대형 치과병원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코디네이터’의 급여는 실적제라는 소문도 들린다. ‘코디네이터’가 환자를 많이 확보하고 고가의 치료를 유도하면 급여를 더 준다고도 한다.


우리나라 치과계가 날이 갈수록 저급한 ‘상업주의’에 오염되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제발 이러한 일들이 소문으로만 그치기를 바라며, 우리 모두가 의료인으로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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