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의 원장 이야기 치과역사(96)]경성치과의학교 부속의원의 이전 (황금정 일본생명빌딩)

2006.08.31 00:00:00

1924년 10월 15일 경성치과의학교 부속의원이 황금정 1번지 일본생명지점의 2층 전부를 빌려 이전했다. 나기라 다쓰미(柳樂達見)가 서양에서 돌아온 것이 1924년 6월이었고, 그때 종로 관유지(애국부인회 장소)를 조금이라도 받아서 부속의원을 세우고 싶다고 신청했다. 그러나 총독부에서 통과되지 않았다. 결국 일본생명 지점장인 오오바 죠우타로(大場常太郞)를 만났다. 학교 일이니 돕자고 이야기가 돼 임대료는 평당 7원이었던 것을 5원으로 했다. 그 2원의 차액은 일본생명에서 기부하는 형태였다. 연간 5000원은 일본생명이 경성치과의학교에 기부하는 형식을 취한 것이었다. 오오바 죠우타로 지점장은 인격이 고결한 분으로 2층을 전부 빌려주었다.


경성치과의학교 부속의원은 철제의 치료의자 15개, 6대의 독일제 시멘스 회사의 렌토겐도를 구입해서 제일의 임상실이 됐다. 그 당시 병원은 후쿠이 마사루(福井 勝)에게 원장으로 취임하도록 했다. 그는 나기라 다쓰미가 도쿄오치과의학전문학교에서 조수로 근무했을 때 졸업생으로 아마 장래가 촉망되던 2회 졸업생이었다.
치료에 오카다 시로(岡田四郞), 보철에 타까시마 요시우도(高島義人), 외과에 니시야마 유키오(西山幸男), 교정학에 모리 테쓰로(森哲郞)였다.


치료실 입구를 들어오면 약국이 있고, 그 뒤에 소독 통이 있고, 접수대가 있었다. 환자가 오면 진찰권을 건넸다. 진찰권도 어느 날 몇 시에 오라고 써 있어, 혹시 1시간, 2시간 늦을 경우 생도는 돌아가도 좋았다. 그 시간 안에는 반드시 있어야 했다. 치료의자도 1반에서 5반까지 나뉘어져, 3반까지 새로운 것을 사용하고, 1개월씩 교체로 했다. 4∼5사람 정도 한 조가 돼 청소도 했다. 환자가 오면 조수가 한사람씩 붙었다. 그리고 오전, 오후로 출석을 2회 불렀는데 나중에는 부르지 않게 됐다. 그 건너편에 교실이 있고 치료실의 옆이 교원실과 기공실이었다.


중심지인 황금정의 일본생명지점에 부속병원을 이전해 드디어 경성치과의학교의 부속의원의 면목을 일신한 병원이 된 것이므로, 재학생은 물론 교직원도 대단히 기뻐했다. 그러나 황금정의 좋은 장소에 치과의학교 부속의원을 설치하게 돼 우리들도 이면적으로 사회일반으로부터 들려오는 말을 듣게 됐다. 개업의가 위협을 느껴 “조선에 그렇게 많은 치과의사를 양성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 현재도 상당히 개업의가 많다”고 했다. 전혀 조선 전체의 치과의사 분포 상태를 생각지 않고, 단지 경성만을 목표한 그런 공격적인 말도 우리 귀에 자주 들려왔다.


그리하여 또 좋은 장소에 치과학교의 부속의원이 생겼다. 요시다 야고에몬(吉田彌五右衛門)과 나기라 다쓰미가 합세하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고 했다.
이이쓰까 테쓰(飯塚徹)는 “학교에 치과용 렌트겐이 있어서 이 사회를 위해 크게 공헌했다”고 말해 렌트겐 한대도 자랑거리가 됐다. 그것은 조선에서 치과용 렌트겐, 유일의 렌트겐 장치였다
그 장소는 토오타쿠(東拓), 센긴(鮮銀), 혼쿄쿠(本局), 니혼세이메이(日本生命)빌딩, 쇼큐긴(殖銀)을 5대 건축이라고 했다. 그 한 개에 부속의원이 있어 대단한 이름을 날렸던 것이었다.

출처: 한국근대치의학교육사(출판: 참윤퍼블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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