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강암의 새로운 치료 전략: 딱딱한 조직을 부드럽게 만들어 암을 치료한다

  • 등록 2025.08.20 16: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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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구강 검진 중 혀나 잇몸에서 비정상적으로 딱딱한 덩어리를 발견하면 우리는 즉시 생검을 통해 악성 여부를 확인한다. 그런데 최근 단국대학교 MRC 김해원 교수님 연구팀이 2024년 Advanced Science지에 발표한 혁신적인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딱딱함’ 자체가 단순히 암의 결과가 아니라 암을 더욱 악화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기존의 수술, 방사선, 항암치료와는 완전히 다른 접근법으로, 암 조직을 물리적으로 ‘부드럽게’ 만들어 치료하는 개념을 제시한 것이다.

 

연구진이 규명한 구강암의 악순환 메커니즘을 살펴보면, 먼저 구강암으로 전이된 상피세포가 Sonic Hedgehog(SHH)라는 신호 단백질을 분비한다. 이 신호를 받은 주변 섬유모세포들은 활성화되어 콜라겐과 콜라겐 교차결합을 형성하는 LOX(lysyl oxidase) 효소를 대량 생산한다. 그 결과 조직이 점점 딱딱해지고, 놀랍게도 이렇게 딱딱해진 조직 환경은 다시 암세포를 자극하여 GLI2라는 전사인자를 핵으로 이동시켜 암세포의 증식과 침윤을 더욱 촉진한다. 마치 악순환처럼 암세포가 조직을 딱딱하게 만들고, 딱딱해진 조직이 다시 암세포를 악성화시키는 vicious cycle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을 차단하기 위해 연구진은 BAPN(β-aminopropionitrile)이라는 LOX 억제제를 활용했다. LOX가 콜라겐 교차결합을 형성하여 조직을 딱딱하게 만드는 핵심 효소이므로, 이를 억제하면 조직이 부드러워져서 암세포를 악성화시키는 vicious cycle을 차단할 수 있다는 가설을 검증한 것이다.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BAPN을 투여한 실험군에서는 조직의 콜라겐 축적이 현저히 감소했고, GLI2의 핵 이동이 크게 억제되었으며, 종양의 침윤성도 현저히 감소했다. 실제로 83%의 쥐에서 혀 및 식도에 침윤성 암종이 발생한 대조군과 달리, BAPN 투여군에서는 침윤성 암 발생이 대부분 억제되었다.

 

이 연구는 구강암 치료에 중요한 임상적 시사점을 제공한다. 진단 측면에서는 구강 조직의 경도 측정이 새로운 조기 진단 도구로 활용될 수 있으며, 비침습적 조직 경도 측정 기술이 이미 개발되고 있어 고위험군 선별에 유용할 전망이다. 치료 측면에서는 기존 치료법에 조직 연화 치료를 병행하면 치료 효과를 향상시킬 수 있고, 특히 수술이 어려운 진행성 구강암에서 새로운 치료 옵션이 될 수 있다. 환자 상담 시에도 “조직이 딱딱해진 경우 정확한 진단을 위해 생검이 필요하지만, 설사 이상 소견이 나와도 조직의 물리적 성질을 조절하는 새로운 치료법들이 개발되고 있어 치료 선택지가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할 수 있다.

 

이번 연구는 구강암 치료의 패러다임 전환을 제시한다. 암세포만을 표적으로 하던 기존 접근법에서 벗어나, 암 주변 환경 자체를 변화시켜 악성화를 방지하는 새로운 전략이다. 이러한 암 미세환경 조절 개념은 현대바이오사이언스가 개발 중인 ‘페니트리움’과 같은 치료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페니트리움은 암 주변의 딱딱한 미세조직으로 인해 기존 항암치료제가 암세포에 제대로 도달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약물이다. 이 치료제는 조직의 강성을 낮춤으로써 항암제가 물리적으로 암세포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돕는 혁신적인 전략을 채택하고 있으며, 현재 전립선암 환자를 대상으로 호르몬 치료제와의 병용요법에 대해 임상 1상 승인을 국내에서 받아 그 임상적 가능성을 입증하고 있다. 비록 구강암 분야에서의 임상 적용까지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지만, 조직 경도를 조절하여 치료 효과를 높이는 이러한 접근법들은 구강암 환자들에게도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앞으로는 구강 검진 시 발견되는 ‘딱딱함’이라는 단순한 촉진 소견도 단순히 진단의 단서를 넘어 개인 맞춤형 치료 전략 수립에 중요한 정보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논문: https://advanced.onlinelibrary.wiley.com/doi/10.1002/advs.202400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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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 단국치대 교수·조직재생공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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