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삶>
불행을 만났을 때
<지홍스님·조계사 주지>

2000.11.11 00:00:00

사람은 누구나 불행을 싫어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인과(因果)로 이루어진 세상에 사는 우리는 때로는 행복을 느끼며 때로는 불행을 맞이해 살아가게 된다. 살면서 갑자기 찾아드는 불행에 우리는 당황하기도 하고 이해할 수 없어하지만 그것은 우연히 찾아드는 것이 아니다. 인과의 법칙에 의해 과거 어느 때의 잘못이 열매를 맺어 지금 다가온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행을 만나게 되면 의연한 마음으로 그 인연에 대응해야 한다. 어차피 맞이해야 하는 불행이라면 거부하고 저항하면서 힘들어하느니보다 당당히 그 불행을 맞이해 잘 극복해내는 것이 현명한 사람의 삶의 모습일 것이다. 어려서부터 많은 고생으로 어렵게 자란 청년이 있다. 그는 어려운 생활을 벗어나 보려고 서울로 상경했고, 다행히 착한 아내를 만나 궂은 일을 다하면서도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다소 과격한 성격을 이겨내지 못한 그는 살인이라는 큰 죄를 저지르고 만다. 그는 7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생활을 하게 되면서 사람을 죽였다는 죄의식과 가족들 걱정 때문에 매우 괴로워한다. ‘차라리 내가 죽어 없어지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겠지’ 하며 자살을 결심한다. 그때 그는 나성준 교정위원을 만난다. “자네는 아주 이기적이고 형편없는 사람이구먼, 괴롭다고 귀한 목숨 끊어버리면 모두가 끝날 것 같지만 잘못된 생각이야. 그것은 다시 새로운 고통이 시작되는 것이라네. 우선 이곳에 들어왔으니 여기 생활을 잘 하게. 건강하고 성실하게 생활하다가 다시 출소하게 되면 반드시 기회가 올 것이야. 그땐 개과천선하는 마음으로 가족들을 더 사랑하고 이웃과 사회에도 좋은 일 하면서 새롭게 살 수 있을 것이네. 희망을 갖고 생활하게.” 이 같은 충심 어린 조언은 그에게 절망 저 밑바닥에서 일어 오르는 작은 희망의 빛으로 가슴에 와 꽂힌다. 그 후 그는 마음의 안정을 찾은 듯하였고 얼굴 표정도 밝아졌다. 그리고 수용기간 동안 열심히 기술을 연마하여 가구제작, 창호제작 등 많은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였으며, 더욱 더 강도 높은 훈련으로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금상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모범적인 수형 생활을 인정받아 96년 석가탄신일 기념특사로 석방된다. 지금 그는 한국전력공사에 취직하여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의 학부모로, 또 어엿한 가장으로 화목한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다. 물론 순간적으로 다가온 엄청난 불행 앞에서 스스로 생을 포기하려 하는 그의 곁에 조언자가 있기는 했지만 어찌됐든 그는 스스로 불행을 딛고 당당히 일어섰다. 그는 자신이 받아야 할 응분의 과보(果報)를 달게 받겠다고 단호히 결심하는 순간 무거운 죄의식에서 벗어나 좀더 성숙한 삶으로, 좀더 좋은 인연으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살다보면 누구나 크고 작은 불행을 만나기 마련이라고 생각하다가도 막상 불행이 닥쳐오면 ‘왜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가’하며 실망과 좌절한 마음을 추스르기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그 누구도 자신이 감당해야 할 불행을 대신해 주지 않는다. 그러한 마음은 고통만 더 가중시킬 뿐이다. 용기가 있고 지혜로운 사람은 다가온 불행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깊이 관조하여 대처할 뿐, 그로 인해 다른 번뇌를 일으켜 고통을 더하지 않는다. 원인없이 생기는 불행은 없다. 그러므로 어떠한 불행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분명한 생의 목적을, 또 ‘나는 이겨낼 수 있다’고 하는 삶에 대한 긍정적인 확신을 가져야 한다. 이런 마음일 때 불행은 훨씬 가볍게 경험되고 불행을 딛고 당당히 일어설 수 있게 된다. 이런 사람은 잠시의 행복에 교만하지 않고 또 조그마한 불행에 비관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생의 목적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뿐이다. 어차피 맞이해야 할 행복(幸福)과 불행(不幸)이라면 잘 풀릴 때는 오히려 겸손하여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하고 도우며, 어려울 때는 작은 행복이라도 찾아 즐겁게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지혜로운 사람의 삶이다. 주어진 인연(因緣) 속에서 최상의 삶을 구현하며 바르게 나아가는 삶은 진정 아름답고 성숙하다.
관리자
Copyright @2013 치의신보 Corp. All rights reserved.



주소 서울시 성동구 광나루로 257(송정동) 대한치과의사협회 회관 3층 | 등록번호 : 서울,아52234 | 등록일자 : 2019.03.25 | 발행인 박태근 | 편집인 이석초 | 대표전화 02-2024-9200 FAX 02-468-4653 | 편집국 02-2024-9210 광고관리국 02-2024-9290 Copyright © 치의신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