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의 원장 이야기 치과역사(81)]호리 타께시(堀武)의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 추억 (중)

2006.05.04 00:00:00

나기라 다쓰미(柳樂達見) 선생에게 감사할 만한 일은 많이 있지만 하나 더 감사한 것은 호리 타께시(堀武)는 일본에서 술의 경험은 그다지 없었던 것이 경성에 와서 상당한 술꾼으로 자인할 정도로 된 것도 선생의 덕택이다. 스케이트와 스키와 더불어 3개를 새롭게 익힌 셈이다.
호리 타께시는 경성을 떠나고 나서 약 1년, 지금의 도쿄 의과치과대학에 돌아오고 다시 일본 여자 치과의학전문학교로 부임을 받았다.


그 무렵은 어느 치과의학전문학교와도 교류가 빈번했으므로 각 학교의 내용은 유리창 안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이해 관찰할 수 있었다. 따라서 호리 타께시는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와 이러한 치과의학전문학교와의 비교가 잘못된 것도 있을지 모르지만 상당히 잘 비교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한 두 개를 뽑아보면 경성에서는 우리들 임상에 종사하는 교수는 제1선에 서서 학생의 환자를 진료하고 지도를 한다.


그러나 일본 교수의 대부분은 자신의 특진 환자만 진찰하고 학생의 지도는 거의 직접 하지 않는다. 어떤 학교의 경우는 신졸 조수의 지도조차 하지 않고 맡길 뿐이라고 한다. 그래서 연구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일이 너무 많으므로 라고 변명하는 사람도 있지만, 교수의 본직인 연구와 지도에서 벗어나 하루 종일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고 묻고 싶을 정도이다. 이것이 학생의 성적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당연하고 국가시험에 가서 보고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겉치레의 말이 아니고, 그 무렵 오늘날 같은 형식의 시험이 시행되었다면 일본의 각 학교를 놀라게 해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경성의 선생들은 일본의 교수가 10∼11시에 출근해서 태평한 것과는 달리 그 성실함과 적극적인 마음 자세가 달랐다.
이것은 나기라 다쓰미 선생의 통솔로 올바른 각자의 신념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드물게 개인용건으로 늦거나 조퇴해도 그것을 나태라고 하는 것을 자각하여 있을 수 없는 분위기가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의 모든 점을 강하게 통합한 하나의 원인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출처: 한국근대치의학교육사(출판: 참윤퍼블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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