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의 원장 이야기 치과역사(100 끝)]경성치과의학교 제1회 졸업생 박준영(朴俊榮)의 회고

2006.09.28 00:00:00


박준영은 경성치과의학교의 제1회 졸업생이다. 그는 학생 때에는 학생 대표인 총대를 했고, 졸업 후에는 한국인만의 한성치과의사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 글은 박준영이 1941년 좌담회에서 학생 시절을 회고한 내용이다.


1922년 경성치과의학교가 설립됐다. 입학지원자는 100명 정도였다고 생각되나 그 중 50∼60명이 입학했다. 당시 학교 건물은 없어 경성의학전문학교의 일부인 B강당을 빌려 썼다. 그 때 한국에서는 보통 사람들이 ‘치과의사란 무엇인가?’ 이해하지 못하는 시대였다. 학생들도 입학은 했지만 충분히 알지 못했다. 모든 것이 빈약해 학생들도 매우 창피할 정도였다. 학생의 옷은 한국인은 두루마기에 중절모 였고, 일본인은 하오리에 사냥모자 였다. 게다가 한국인과 일본인 남녀공학이었고, 야학이었다. 학생들은 치과 분야를 희망한 이상 어떤 고난이 있어도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1학년 때에는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를 해야 하는 상태였다. 낮의 직업은 각각 틀려서 어떤 사람은 상점을 하고, 어떤 사람은 공무원, 또 회사원도 있었다. 그때의 선생들은 대부분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재직하던 선생이었다.


B강당에서 1년을 지내고 2년이 되는 때에 사건이 돌발했다. 그것은 경성치과의학교가 내일부터 주간교육을 한다는 것이었다.
“아침에 학교에 와서 오후에 돌아가라.” “그리고 제복, 제모가 정해졌다”는 것인데 이것은 50∼60명의 학생 사이에 갑작스러운 문제가 된 것이었다. 당시 학생들은 20세 이상으로 50세 가까이 된 사람도 있었다. 그 중에는 가족을 위해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도 있어서 주간 수업이 되면 곤란한 사람이 있었다.


게다가 당시는 아직 학교가 지정되지 않았다. 학교가 지정된다는 것은 졸업과 동시에 치과의사로서 개업할 수 있는 자격이었다. 그러나 나기라 다쓰미(柳樂達見) 교장의 힘이 있다고 하더라도 완전히 믿을 수는 없었다. 지정학교로 됐다면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졸업할 때까지 많은 학생이 견디어 냈을 것이었다. 결국 생활문제로 퇴학한 사람도 있어 겨우 30명 정도밖에 학생이 안 남았다. 남은 30명은 나기라 다쓰미 교장을 절대적으로 신뢰했다. 어떤 고통과 불편이 있어도 서로 격려하며 제1회로 졸업하자고 했다.


B강당에는 1학년생이 또 입학했다. 2학년 학생들은 그 B강당의 뒤에 있는 의학전문학교의 창고을 수리한 10평 정도의 장소에서 판자를 붙인 책상에서 실습을 했다.
선생은 일본에서 오카다 타다시(岡田正), 야오 타로(失尾太郞), 히라마 켄지(平馬健兒), 후쿠이 마사루(福井 勝)와 또 서울시내에서 개인적으로 개업하고 있던 사람이 왔었다. B강당의 뒤에서 학생은 석고모형을 준비해 기공 실습을 했고, 박준영도 어느 누구보다도 열심히 했다. 어느 때인가 증화 캔이 폭발해서 머리를 다친 학생도 있었다. 사무실은 조선 기와 집으로 코우노 기헤이(河野儀兵衛)가 열심히 서무와 회계로 일해 주셨다.


우리들 30명 미만의 학생 중에는 여자가 3사람 있었다. 코우노 기헤이의 딸 코우노 나츠요(河野夏代), 지금 만주에서 개업하고 있는 김름이(金凜伊), 또 한 사람은 강흥숙(姜興叔)이였다. 10대 1의 비율로 꽃과 같이 학생들과 공부했다. 학생들은 경성치과의학교가 지정될 것을 희망하며, 실습에 몰두했으며, 나기라 다쓰미 교장도 밤낮 없이 학교를 위해 노력했다.


학생들이 쓰던 모자는 둥근 모자였고, 학교의 기장도 있었다. 2학년이 돼도 학교는 지정되지 않았다. 주간 학교였기 때문에 낮에 돈을 벌 수 없어 박준영의 선배들은 많이 걱정을 해주었다.
제3학년이 됐다. 황금정 입구에 화월식당의 2층을 빌려서 경성치과의학교의 부속의원이 생겼다. 외래환자가 오고, 학생들은 백의를 입고 환자를 진료했다. 생각해보면 남의 집만 빌려서 여기저기 돌면서 3학년이 됐다. 그러나 지정도 확실치 않고,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이것도 운명이다. 올해 1년이 지나면 소정의 치과의사 시험을 보지 않으면 안된다고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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