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시론]차려 놓은 밥상/김여갑 본지 집필위원

2007.01.01 00:00:00

작년에 어떤 영화대상 수상식에서 한 배우가 대상을 수상하면서 말한 짧은 인사말이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적이 있다. 내용이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잘 차려놓은 밥상에서 나는 그저 맛있게 떠먹기만 했을 뿐”이라는 말이다. 그 당시 필자도 보았지만 수상자는 약간은 흥분된 모습으로 한편으로는 쑥스럽게 말했는데 이 인사말을 보던 많은 사람들에게 재미있고 또한 공감이 됐던 모양이다. 뉴스에서도 소개가 됐고 1년이 지난 지금도 여러 시상식에서 이 말을 이용한 인사말이 많이 인용되고 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 모두 즐겁게 웃으며 이 인사말을 즐긴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처럼 스스로를 낮추고 한 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할 수 있는 딱 알맞은 인사말이 없었던 것 같다.


이제 황금돼지해, 丁亥年이 시작됐다. 몇 곱을 돌아 찾아온 돼지띠인 필자에게도 이 말이 조금은 다른 의미로 내 마음을 두드리며 다시 한 번 주먹을 불끈 쥐게 한다. 대학생활을 하는 동안 ‘無에서 有를 창조한다’는 마음으로 나름대로 공부에 열중했고, 각종 동아리를 만들며 부지런히 대학생활을 했다. 당시의 교수님들은 정말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도와주셨다.

 

나도 교수가 되면 저렇게 해야지 했지만 그 절반도 쫓아갈 수가 없었다는 것을 고백한다. 어느 시기까지는 출근해 연구실에 가방만 놓고 하루 종일 의자에 한 번 앉아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열심히 환자를 보기도 했고, 진료 후에는 늦게까지 논문을 쓰다가 수위아저씨가 정문을 잠그고 자리를 비우셔서 찾아다니기도 수차례 했다. 개인적으로 어려운 시기도 있었지만 과분하게도 대학에서 누릴 수 있는 영광도 모두 누려보았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지시하는 어느 시기가 됐을 때부터 남이 차려놓은 밥상을 맛있게 먹는 단계를 넘어 먹여주지 않으면 먹지도 않고, 먹을 수도 없는 경우도 있었다. 指導라는 명분아래. 그런데 요즘 너무 일찍 손 놓는 후배를 흔히 볼 수 있게 됐다. 선배들에게서 좋지 않은 점을 먼저 배운 것인가? 어쨌든 필자는 이제 자유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여유를 가지고 욕심 없이 다시 시작하려 한다. 아마 옛날 같지는 않을 것이다. 속도도 느릴 것이다. 그러나 熱情은 있다. 그 열정을 누군가를 탓하고 원망하는데 쓰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創造를 위해 쓰려고 한다.


뜨거운 창작열을 가지고 창작을 위해서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모두 忍耐라고 했던 200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터키의 작가 오리한 파무크는 고뇌하며 하루에 0.75장의 글을 썼다고 한다. “바늘로 우물을 파는 각오”로 서두르지 않고 꾸준히 글 쓰는 일을 생활화했다고 한다. 파무크가 뜻하는 것과는 다를지 모르지만 필자는 여기서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됐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 시간이 부족해 조금 밖에 할 수 없을 때 아예 “다음에 하면 되지” 하면서 미룬 경우는 없는지 모르겠다. 매일 이렇게 한다면 한 달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난 후 되돌아보았을 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루에 0.75 장의 원고를 쓰듯 우리는 조금씩일지라도 미루지 말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庚戌年을 보내고 丁亥年을 맞으면서 꾸준히 실행해 미루는 것이 없는 새해가 되기를 바란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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