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시론]진료의 가치/김호영 본지 집필위원

2007.01.08 00:00:00

최근 우리나라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국적포기자들의 경우에 조기에 미국에 진학을 시키려고 부모들이 서류를 요구하는 경우가 더러 있을 것이다. 운 나쁘게도 이런 환자를 만나게 되면 그들이 요구하는 서식(태어나서부터 현재까지의 진료기록)에 맞춰 서류를 써줘야 하니 짜증이 안 날 수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원정출산으로 국적포기까지 한 아이를 위해 저런 서류를 다 써줘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약간은 화가 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일단 치료를 한 번 받기 위해 제출해야 할 서류에서 환자들을 압도(?)한다. 그러나 이런 제출서류와 서명을 해야 하는 서식들은 의료관련 소송이 많은 미국의 특성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로 인해 사회적 비용이 많이 들고 그런 비용까지 진료비에 포함돼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비싼 시스템이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항생제 내성균 문제로 보면 우리나라의 항생제 내성균이 OECD 가입 국 중 최고수치라는 것인데,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의약분업 이전의 의약품 유통과정의 문란, 의사들의 항생제 과다처방, 약국에서 무분별하게 팔려나간 항생제, 일반 국민들이 항생제에 대해 영양제 정도로 가볍게 여긴 무지 등에 기인한다는 등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우리나라 치과의사들은 뜻하지 않게 진료에 부가적인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약 부작용과 관련된 것이었다.


대다수의 우리나라 환자들은 두드러기 등의 약 부작용을 테스트를 통해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 체험해 알고 있다는 무지막지한 현실인 것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본다면 빈도가 높지 않은 allergy 가능성 때문에 가난한 환자에게 검사를 하는 것은 돈만 밝히는 일로 보일 수 있다. 무지한 의료사회주의자들의 눈으로 본다면 검사 결과가 negative로 나온다면 헛돈을 쓴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논리는 매우 위험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다수를 위해 소수를 위험에 빠뜨려도 된다는 논리이기 때문인데, 암이나 백혈병 등의 본인부담금은 여전히 높은데도 불구하고 치과보철 급여화를 하라는 주장이 있는 것과도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일단 난치병을 앓는 그들은 소수이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참담하게도 이런 관행과 무지로 어떤 경우에는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여러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세균들이 많은 나라가 돼버린 결과를 불러왔다. 내과나 타과의 진료를 받으러 가서, 건강에 관한 설문지를 작성해 본 기억들이 있는 경우보다는 없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며, 투약을 위해 테스트를 받거나 했던 기억이나 각종 혈액 검사를 받아본 기억 보다는 그렇지 않은 기억이 많이 있을 것이다.


치과의 경우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데, 실제 진찰시간은 얼마 되지도 않았고, 환자와 대화를 하는 시간도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내원환자수가 감소하면서 환자를 응대하는데 마케팅 개념 따위는 많이 들어와 있지만 바람직하지 못한 경우가 상당히 많은데, 진료상담이 주로 무엇으로 보철을 하며 치료비가 얼마가 나오는지가 주된 상담내용이 돼 버리는 치과의사와 환자 사이의 진찰이 아닌, 상담직원과 고객의 대화로 변질돼 버린 일이 허다하다.


효율성이란 측면에서 얼마짜리를 몇 개,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와 진료비 지불 방식의 문제가 우선시되는 이런 풍토가 확산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낳게 될 것임은 자명하다. 중대한 가치를 부여해야 하는 ‘진단’ 그 자체의 가치폭락은 결국 전반적인 치과 환자들의 치과치료에 대한 불신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문제를 갖고 있으며, 항상 원가 논란에 휩싸일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귀찮은 절차로 보일 수 있는 건강문진표나 치료동의서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해 볼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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