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시론/이안희]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하)

2007.07.09 00:00:00

<1560호에 이어 계속>

 

우스운 얘기지만, 대학시절 시험기간에 버스도 다니지 않은 아주 이른 추운 겨울날 새벽에 무서움과 추위를 이겨내며 아무도 깨지 않은 깜깜한 거리를 걸어 학교 앞에 도달해서 환하게 밝혀진 도서실을 한참 올려다보며 지금의 이 노력이 훗날 보상 받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다.
학창시절 힘들게 공부를 하거나, 많은 세미나를 참여하면서도 그 보이지 않는 노력이 어떤 식으로든 나에게 그리고 나를 찾는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늘 믿어왔다. 문제와 고통을 가지고 나를 찾아온 환자분들께 최선의 만족스러운 진료를 했을때의 뿌듯함과 그분들에게 받았던 감사와 대가들이 이미 나에게 충분한 보상을 선사했다고 생각한다. 감상적인 이야기로 들릴지는 모르지만, 내가 환자를 진료하고 대가로 받는 숫자로 환산되는 그 돈 안에는 눈앞에 보여지며 소모되는 재료들 외에도 그 새벽 내 뺨을 스쳐갔던 칼바람과 바로 며칠전 덮었던 전문서적의 어느 한 페이지처럼 때론 내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가치들이 숨어져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을 어떻게 값으로 매길 수 있단 말인가.


비약하는 감이 없진 않지만, 우리는 언제부턴가 눈앞에 보여지는 것, 만져지는 것에만 가치를 부여하는 경향이 심해졌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가치는 눈에 보여지는 것들에 의해 점점 밀려가고 있는 것 같다.


배우자를 고르는데 있어서도 성품보다도 숫자로 따질 수 있는 경제력이 우선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의 성공을 평가하는데 있어서도 그 사람의 학력, 재력, 사회적 지위 등으로 판단하기도 한다. 그 사람이 지금 얼마나 행복한가, 어떤 철학을 가지고, 얼마나 만족하며 살고 있는가가 아니다. 말하지 않지만 침묵의 순간에 오히려 더 많은 의미가 전달되고 있다고 느끼는 때가 있다. 들리지 않지만, 느껴지지 않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가치를 매겨줄 줄 아는 것이야말로 결국 우리 모두가 지향해야하는 궁극의 성숙한 모습이 아닐까?


갈수록 이기적이고 계산적이 돼 가는 세태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 일찌감치 그것을 수용하고 대처하는 것이 현명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환자에게 국산, 외제, 혹은 얼마짜리 임플랜트를 따져서 개수로 곱하기를 해서 돈을 흥정하기 전에, 성실한 태도와 진실한 대화를 통해서 환자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등 환자와의 견고한 라뽀(rapport) 형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환자가 원가를 떠나, 그것의 몇 십 배의 대가를 지불해도 아깝다고 느끼지 않을 만큼, 자신이 선택한 진료에 대한 확신과 의사에 대한 신뢰성을 심어 주는 것이 수요자와 공급자 각각의 기대치에 대한 갭을 줄이는 최선이 아니겠는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의 가치를 인정하고 거부감 없이 대가를 지불하게 하려면, 우리도 그것들을 느끼게 하고 이해시키는데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야 할 것이다.
세상이 변해가더라도 치과의사로서의 자존심과 품위는 지키고 싶지만 그것이 이제는 저절로 얻어지지 않고, 스스로 만들고 지켜가야 하는 때가 온 것 같다.

 

관리자
Copyright @2013 치의신보 Corp. All rights reserved.





주소 서울시 성동구 광나루로 257(송정동) 대한치과의사협회 회관 3층 | 등록번호 : 서울,아52234 | 등록일자 : 2019.03.25 | 발행인 박태근 | 편집인 이석초 | 대표전화 02-2024-9200 FAX 02-468-4653 | 편집국 02-2024-9210 광고관리국 02-2024-9290 Copyright © 치의신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