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시론/이승호]綠陰芳草(green shades and fragrant plants)

2007.08.27 00:00:00

이승호<본지 집필위원>


주말 혼자서 산을 찾는 경우는 마치 물 머금은 화장지조각처럼, 지친 나머지 전신으로부터 기가 완전히 소진된 날이다. 어제 오후 청계산을 오르면서 바야흐로 가장 짙어진 녹음기가 살짝 지나가고 있는 시기일 것이라 여겼다. 이름 모를 풀과 나무는 너무나 무성해 밀림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요즈음 게릴라성 호우에다 장마기간보다 훨씬 더 많은 비가 오기도 하지만, 꾸불꾸불 산행길가 구석진 자리마다 흐르는 물소리 경쾌하고, 호흡하기 적당한 습도에 기분은 절로 좋아진다. 전방으로 억지로 발걸음 내딛고 무거운 신체 조금씩 산 위쪽으로 옮겨다 놓을수록, 땀은 연이어 줄줄 온 몸을 흥건히 적시지만, 존재의 가벼움을 느끼는 대신 조금씩 주위기온은 내려갔다.


몇 년을 살든 각자의 인생행로에서 정답이 따로 있을 수 없다면, 어쩌면 존재 그 자체 그대로가 전부일지도 모른다. 실로 모든 것은 시간과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기야 하지만, 깨달음을 얻게 됐노라 뒤늦게 외치더니 난데없이 주위를 소란하게 한다. 잠시 진리 가까이에 머물렀다면 커다란 행복임에 분명하겠지만, 스스로 행복하다는 착각 속에서 평생을 살다 간 인생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은 깨끗한 삶이라면, 비로소 나름대로 높은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고 싶다.


날마다 능력부족에 심신허약을 드러내더니, 다듬어지지 못한 심성이 갑자기 툭 불거져 도무지 볼썽사납더라도, 드러나는 결점을 매일같이 쥐어뜯거나 가끔 이해하고 받아주는 사람이 곁에 있음으로 인생 전 과정에 걸쳐서 결국 남들을 이롭게 하는 경우에는, 우리는 그 인물을 꽤 괜찮은 사람으로 알 뿐이다. 인간존재의 불완전성을 인정하면서 자신감 부족 또는 소박함으로 매일 기도까지 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뛰어난 사람, 성공하는 자가 틀림이 없을 것이다.


나아갈 바를 따져서 항상 노력하고 지성의 향상을 도모하는 사람과 순수인간성을 실천하는 자는 궁극에는 그 끝이 같을 수 있다고 헤르만헤세는 ‘지와 사랑’에서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생각만 많았던 어린 시절, 두 가지가 적당히 섞이면 진리에 도달하기가 어려울 줄 알았는데, 요즈음 다시 따져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융통성 부족에 기인한 철없음, 인류는 얼마나 많은 손실을 입고 살아 왔던가!
TV화면에 비치는 남루한 차림의 탈레반 용사들은 각자 개인화기를 하나씩 들고서 저마다 힘차게 뛰고 있었다. 전부 얼굴을 천으로 싸고 있지만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그랬던 것처럼 나이어린 용사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푸른 나무가 절대 부족해 보이는 아프가니스탄에는 아직도 19명의 순진한 한국인들이 인질로 잡혀있는데, 모두 5개 조(組)로 분산억류하고 있다. 일부 한국인 인질은 “모두 한 곳에 있게 해 달라”며 19일 아침부터 단식투쟁에 들어갔다고 한다.


약 10년 전에 읽었던 일종의 사회진단서 ‘문명의 충돌’에서 새뮤얼헌팅턴은 문명사적 관점에서 국제질서의 변화를 예견하고, 냉전 종식으로 인한 오늘날의 세계를 그리스도교, 중국, 아프리카권, 아랍 등으로 나눠 조명하고, 향후 이슬람교를 중심으로 한 세력과 중국이 크게 부상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무슬림은 오늘도 그네들대로 선을 행하고자 금식에 기도를 하고 자식들을 먹이고 올바르게 가르치겠지, 심각한 모습의 굳어진 얼굴로 자유와 해방이라는 구호아래 코란의 진리를 외쳐대고 있겠지.


숲이 부족해 헐벗은 민둥산이 많은 북한은 이번 폭우로 인해 사상최대의 인명피해가 났다고 한다. 지난 7일부터 12일 동안 평양을 비롯해 강원도 평안도 함경도 등 북한 전역에 폭우가 쏟아지면서 수백 명이 숨지거나 실종되고 가옥 수만 채가 침수되는 등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고, 따라서 남북정상회담은 10월 2∼4일로 연기됐고, 우리는 6자회담의 결과를 더 관심을 가지고 주시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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