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태 월요칼럼]일부 논객들의 아유성(?) 글 - 피곤하다

2007.09.03 00:00:00

어제는 실컷 글로 욕해놓고 오늘은 글로 극찬하는 인간시장이 우리가 살고 있는 정치세계이고, 문화세계이던가.
바로 어저께는 실컷 어떤 정당의 경선에 나온 후보를 매우 질타하며 그 후보의 성격과 관련해 최대의 악평을 해 놓고, 경선이 끝나자마자 비판했던 후보의 태도를 극찬하는 글을 쓰는 극소수 일부 논객들의 모습을 보고 절필(絶筆)이라도 하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솟아 올랐다.
논객이란, 사회의 제 현상에서 나타나는 어떤 사물이나 사안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 자기의 의견을 솔직히 논(論)하는 사람을 뜻한다.


A라는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도 평가할 수 있고, 또 저렇게도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고유한 자유의지인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공적(公的)으로 언론을 통해 활동하는 논객은 어떤 대상에 대해 논할 때는 사안(事案)의 본질에 대해 판단하고 비판할 수는 있으되, 어떤 대상의 성품이나 인품과 관련된 부분의 비판에 대해서는 보다 냉철해야 한다는 것은 사회를 살아나가는데 있어서의 기본 상식이라 할 수 있다.


어제는 어떤 면에서, 어떤 후보의 인격까지 거론하며 매우 나쁘다고 비판해 놓고는, 게임이 끝난 후 극찬하는 식으로 정반대의 표현을 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즉흥적이자, 감상적이며, 비지성적이자, 아유(阿諛)성 논객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더욱이 ‘권력게임’이라는 경선에 노정(路程)된 경우에는 논객을 통해 권력주체를 대상으로 하여 논객들은 주관적인 글을 쓰게 마련이다. 물론 논객의 명예를 걸고서….
그런데 경선기간과 경선이 끝난 직후 글께나 쓴다는 일부 논객들의 야릇한 속성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몇 편 있었다. 예컨대 태도를 180도 급변해 아부성향이나, 간사함이나, 간교함 따위들로서 머리를 굴려 글 속에 그것이 그대로 묻어나오는 글들의 경우가 있었다는 뜻이다.


물론 이에 해당되는 일부 논객이 어제와 오늘 다른 말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또 변화무쌍한 것이 자기의 신념이었다고 말한다면, 어쩔 도리는 없겠다. 그러나 글 쓰는 이는 일관된 신념과 가치 그리고 냉철한 비판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평소에는 누구에게 사안(事案)과 전혀 다른 인격적 비판을 서슴지 않았던 논객이 게임이 끝나자, 급작스러운 태도변화를 서슴지 않는 어쭙잖은 모습들은 어떤 측면에서 매우 어색하고 속된 말로 ‘닭살’이 돋을 지경이 된다.


이번에도 예외 없이 그러한 극소수 일부 논객의 글이 잔잔한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심중에는 ‘변절의 논리’와 ‘양지(陽地)만을 좇는 논리’가 있을 뿐, 인간적인 면모는 찾아보기 힘든 경우의 글을 만나면, 그 무엇인가 유쾌하지 않은 느낌을 강렬하게 갖게 된다.
어제 어떤 대상의 성품이나 인격을 비판했다면, 차라리 침묵을 하든지 아니면 그대로 비판적 요구를 계속하던지 하면 될 것이다. 새삼스럽게 미사여구를 동원해 채색하려고 노력하는 모양새는 그렇게 썩 빛날 수가 없다.


일부 양지를 좇는 논객들의 ‘실루엣’은 그야말로 부끄러운 자화상을 여과 없이 드러내 보인다는 말이 설득력을 갖는다.
오히려 누구처럼 순수하고 일관성 있는 글을 게재함으로써 논객의 신념체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낯 뜨겁고 부끄러운 글을 써야하는 논객이 지닌 차원 높은 아유의 표현을 보면서 또 한 번 이 세상의 새로운 모순을 체험하게 된다.
제발, 낯 간지럽고 부끄러운 글일랑 가급적 보지 않을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우리들의 공통된 소망이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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