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삶/황재국 목사]행복의 조건

2007.10.04 00:00:00

 

사람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원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추구해온 최고선은 행복입니다. 그러나 정작 ‘행복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정답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국어사전에는 행복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① 복된 좋은 운수 ② 심신의 욕구가 충족돼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상태. 물론 이러한 내용이 행복이라고 할 수 있으나, 여기서 우리의 관심은 어떻게 그러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 등의 5복을 받아 누리면 행복한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그 외에도 사람마다 삶의 경험에 따라 복과 행복에 대한 기준과 조건은 조금씩 다릅니다. 어쨌든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민족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복 받기를 원하고 행복한 삶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가 명절에 자주 사용하는 인사가 “복 많이 받으십시오.”입니다. 복을 빌어주기도, 받기도 좋아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한국교회의 신앙형태는 복 받는데 최종 관심을 두는 ‘기복신앙’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보면 예수를 믿으면 ‘복 받는다.’ ‘팔자 고친다.’ ‘형통한다.’고 먼저 말하지 않고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6:33)고 명령하십니다. 그리하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진정한 행복의 조건은 나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전에 하나님의 요구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가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신앙의 바른 우선순위입니다. 일찍이 일본의 유명한 신학자 ‘우찌무라 간조’는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저에게 생활의 안정을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두려움 없이 당신을 따르겠습니다.”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너는 내 명령을 따르라. 그러면 내가 너에게 삶의 안정을 주리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는 그분의 말을 믿을 수 없어서 계속 굽히지 않고 졸라댔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고 끝내는 지쳐서 “하나님, 저는 당신의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나의 온 몸과 온 가족을 모두 당신의 손에 맡깁니다.”라고 했더니 생활의 모든 염려가 사라지고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들을 때를 따라 공급하시는 체험을 하게 됐고 그 결과 하나님이 먼저이고 자신은 나중이라는 것과, 내가 안전해야 하나님께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가면 안전해진다는 것을 체험했다는 고백입니다. 성경상의 행복(Happiness)이라는 단어는 ‘행운’보다는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사람에게 내려주는 ‘축복’(blessing)이라는 뜻이 더 강합니다. 그런데 ‘축복’이라는 단어는 원래 ‘피를 흘리다.’라는 뜻의 ‘bleed"라는 앵글로 색슨족 단어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즉 ’피의제사‘를 통한 神과 인간의 올바른 관계를 전제한 단어가 ’축복‘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부터 출발함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계절은 본격적인 가을로 접어들어 수확의 시기가 맞이하고 있습니다. 결실의 계절인 가을을 흔히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도 표현하는데 요즘 “천고마비”는 “하늘에 고약한 짓을 하면 마비가 온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나쁘면 건강의 마비, 경제의 마비, 양심의 마비, 가정의 마비가 올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에 힘쓰시는 복된 가을을 맞이하시길 소망합니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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