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시론]돈 20억/신순희 본지 집필위원

2007.11.05 00:00:00

“요새는 20억이랍니다.”
오랜만에 만난 한 지인이 내게 구체적 액수를 말한다. 소위 중산층 이상이라고 자부하는 이들이 노년을 (적어도) 구질하지 않게 보낼 수 있다고 여기는 은퇴 금액의 최근 버전이라고.
온 국민 10억 만들기 열풍의 기억이 오래지 않은데, 그새 20억으로 올랐나 하며 그 속도감에 우선 당혹스러운 내게 부동산 10억, 현금자산 10억이라고 그이가 친절히 덧붙인다.


구질을 피할 수 있다는 20억이라는 금액, 참으로 누군가에겐 절망감을 줄 정도의 엄청난 액수일 것이고, 반면 어느 입에선 “에게~”하는 소리가 나올 수도 있겠다. 개인의 자산 상태를 짐작케 하는 잣대로 사용 가능하다. 20억이 이 시대에 어느 정도의 의미를 가지는 돈인지 네이버로 검색해 보니 다양한 기사들이 뜬다.
‘최대기업 삼성, 수재의연금도 역시 최대 20억.’


지난 9월 태풍 나리로 큰 피해를 입은 제주도민들에게 삼성이 쾌척한 금액도 20억이란다. 이 정도 금액이면 ‘최대기업’이라는 화끈한 언론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액수인가 보다.


이어지는 기사들. 톱스타인 가수 이효리가 상반기에 올린 광고 매출도 20억이고, 축구팀 울산현대가 우승을 위한 필승카드로 영입한 골키퍼 김영광의 이적료도 20억이고, 또 창조한국당의 대선후보 문국현씨가 강남 부동산으로 4년 만에 벌었다는 돈도 20억이다. 아~ 20억, 참으로 큰 액수가 맞는가 보다. 한 개인에게도 사회적으로도 화제가 될 만한 정도의 돈이니 말이다.


사실 검색이 굳이 필요하겠는가.


한비야씨의 활동으로 더 유명해진 국제구호단체 월드비전의 해외아동 후원금액이 월 2만원이니, 20억은 10만 명의 어린이가 한 달 동안 생명과 직결된 깨끗한 식수를 마시고 예방접종을 받고 영양분을 섭취하며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돈이다. 그야말로 돈이란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가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니 말이다.


복지부의 내년도 치아홈메우기 사업 예산이 16억에서 36억으로 오른다고 한다. 두 배도 넘어 자그마치 ‘20억’씩이나 올랐다. 그리고 치협은 이러한 정부의 대국민 구강보건사업에 협조(?)키로 했다고 한다.


지난 5월 17일, 복지부 내 구강보건전담부서인 구강보건팀이 해체됨에 따라 치협을 포함한 범 치과계 비상대책위원회가 정부정책의 가치 부재, 일관성 부재를 비판하며 과천에서 시위를 했고, 항의의 표시로 복지부의 모든 공중구강보건사업에 협조하지 않기로 결정한 바 있다. 겨우 몇 십만 년 전도 아니고 불과 서너 달 전에 말이다.


구강보건팀 부활의 소식도, 범치과계 비대위의 입장 변경 소식도 들리지 않는데 20억과 치협의 협조 소식만이 들린다. 고작 예산 20억에 치과계가 넘어간 것이라는 일부의 자조 섞인 한탄이 사실의 전부는 아닐 거라고, 20억이 그 정도의 돈은 아니라고, 나는 믿는다.


그렇지만 차라리 긴급 구호가 필요한 10만 명의 아동들에게 식수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복지부와 치과계가 관계복원을 했더라면 하는 멈추지 않는 나의 상상은, 20억의 망치로 얻어맞은 충격을 완화해 보려는 순전히 나만의 궁색한 자기 위안이 분명하다. 언젠가 은퇴할 때, 나는 현재가치의 20억을 가질 수 있을까.20억의 증가된 예산이 국민구강보건 향상이라는 (구)구강보건팀의 역할을 조금이나마 대신할 수 있을까.
지켜 볼 일이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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