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시론]남진과 나훈아/신순희

2008.02.04 00:00:00

신순희<본지 집필위원>


EBS에 ‘다큐-맞수’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아쉽게도 작년 봄 종료했지만 어릴 적 읽은 명작문학들처럼 오래도록 마음에 울림이 남는 보기 드문 수작이었다.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에게 경쟁은 피할 수 없는 것, 그러나 서로의 존재가 때로 목표가 되고 때로 자극제가 되면서 더불어 성장해 가는 두 맞수를 보는 일은 참 멋진 구경이 아닐 수 없다.


1970년대 초반, 가수 남진과 나훈아는 최고의 스타이자 라이벌이었다. 당시 둘은 방송에서 함께 소개되는 것도 꺼려했을 정도로(누굴 먼저 소개하느냐가 첨예하게 대립했기 때문이었단다) 라이벌 의식이 대단해서 국내 대중음악 사상 처음으로 팬들의 라이벌문화까지 생겼을 정도였는데 최근의 동방신기와 슈퍼주니어와는 그 급이 다른 당대의 대단하고 살벌한 맞수였다고 한다.
이제 세월은 흘러 열애설마저 경쟁적으로 뿌려대던 젊음도 가버린 지금, 환갑이 넘은 두 중견가수는 많이 다른 지점에 서 있다. 좀 더 유복한 집안환경에서 자라 준수한 외모까지 가졌던 가수 남진은 평범한 중견가수가 돼 있고, 여러 가지 면에서 좀 더 치열한 인생을 살아야 했던 나훈아는 일명 국민가수에게만 허한다는 세종문화회관 단독 공연을 거의 매해 하고 있다. 가수로서 나훈아는 정말 잘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나훈아보다 나훈아 괴담이 더 잘나가는 듯하다. 세상이 온통 그 얘기다. 아홉시 뉴스에서도, 식당에서도 그의 해명 기자회견이 멋졌다는 얘기, 하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절대로 안난다는 얘기, 내 친구의 친구가 기획사를 다니는데 이미 연예가에선 다 아는 사실이라는 얘기 등. 한때 A양, B양 등을 순식간에 사회적 살인했던 바로 그 괴이한 ‘카더라매카니즘’이 또다시 맹위를 떨치고 있다.


결국 그는 황우석 때보다 더 많이 모였다는 기자들을 상대로 보여줘야 믿겠냐며 기자회견을 해야했고 그즈음 남진은 퉁퉁하고 편안한 동네 아저씨의 모습으로 아침마당에 나와 "앙코르 쇼뮤지컬 설 판타지"를 홍보했다. 많이 봐달라고.
어쩌면 남진은 잘나가는 한때의 맞수 나훈아의 뒤편에서 남모를 패배의식을 느끼며 긴 시간을 겪어냈을 것이다. 오늘날 그렇게 편안한 모습으로 아침마당에 서기까지 패배의식, 자존심의 붕괴, 질투심 등 가장 치열한 자신과의 경쟁을 이겨내야 했을 것이다.
이제 그 긴 시간이 나훈아의 앞에 놓이게 된듯하다. 가수로서 카리스마의 유지와 공연의 완성도를 위해 평상시 대중 앞에 모습조차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나훈아가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을지조차 확신이 안선다고 말하고 있다.


모든 순간 경쟁은 맞수든 적이든 외부의 그 누구를 향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내부의 나 자신과 하는지도 모른다.
괴담의 실체는 어쩌면 질투가 아닐까.
우리는 멋지고 잘나가는 스타를 선망하지만 선망과 질투는 동전의 양면이라고 한다. 가지고 싶은 욕망만큼 못 가진 분노는 자란다. 언어로나마 스타를 비틀고 학대하면서 우리의 못난 질투심은 조금쯤 위로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가 이겨야 할 진짜 경쟁 상대는 내부의 못난 나, 질투하는 나, 움츠린 나, 절망하는 나일 것이다.
카리스마 나훈아씨가 이번 사건을 인생이 준 숙제이자 화두로 삼아 잘 풀어나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어쩜 그는 이제사 진짜 맞수를 만난 셈이니 말이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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