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시론 China free와 USA free

2008.06.09 00:00:00

신순희<본지 집필위원>


China free와 USA free


세 아이의 엄마인 미국 주부 사라 본지오르니는 ‘메이드 인 차이나 없이 살아보기(2007)’라는 책에서 1년 동안 중국제품을 쓰지 않고 살아 본 경험을 소개했다.
남편은 호시탐탐 보이콧에서 빠져나가려 했고 아이들은 ‘메이드 인 차이나’ 표시 장난감 앞에서 생떼를 썼으며 자신은 떨어진 프린터 잉크를 구하지 못해 기자라는 생업에 지장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다시 중국산 보이콧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 본다면, 뭐라고 대답할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왜냐면 중국산이 아닌 것은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납이 검출된 유아용 턱받이와 완구, 쓰레기만두, 가짜 계란, 기생충 김치, 독성물질이 함유된 치약 등 수많은 중국산 제품들이 늘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그러나 오늘도 우리는 중국산을 쓴다. 싸기도 하거니와 무엇이 중국산이고 무엇이 아닌지를 구별하는 것이 일개 소비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수준이 됐기 때문이다. 싼 것은 소비자뿐 아니라 원재료를 사야하는 생산자에게도 매력적이므로 메이드인 코리아나 메이드인 유에스에이를 붙인 어느 상품도 원료부터 China free인지 소비자는 알 수는 없다. 두려움을 뛰어넘는 ‘값쌈’의 위력이다.
지금 청계광장에 모인 수많은 촛불은 “위험하지만 값싼” 미국산 소고기의 위력을 사전에 막아보려는 소비자운동의 성격이 크다.


여기에 과학적 근거와 정치적 의도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리라. 국내에선 인체감염 사례가 단 한건도 없었고 끓이기만 하면 안전한 조류독감도 뉴스에 한번만 나오면 치킨집 매출이 뚝 떨어지는 게 국민정서이니 말이다.
2008년, 한 아이의 엄마이자 한국 주부인 나는 광우병의 위험에서 내 아이를 지켜내고 싶지만 싸고 위험한 소고기가 국내에 광범위하게 유통된다면 미국산을 보이콧하고 USA free를 실천하는 데는 솔직히 자신이 없다.


자라면서 아이가 먹을 햄버거와 김치볶음밥과 떡볶이와 김밥과 부대찌게와 설렁탕과 불고기를 어떻게 다 막아낼 수 있겠는가. 그 음식들에 어떤 소고기가 들어갔는지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더 비싼 재료를 썼겠지 하고 믿는 것은 엄마로서 직무유기다.
기생충 김치와 광우병 소고기는 차원이 다르다. 그러므로 안전에 확신이 없는 한 유통을 차단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의 의무다. 불안하다는 근거가 없다고 유통시키는 건, 그건 아니다. 그건 국가가 아니다.
평범한 많은 한국 주부들은 정말 이렇게 생각한다. 많은 학생들도, 많은 시민들도 이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목소리는 국가 정책에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 늦췄던 장관고시가 발표됐고 수입은 곧 재개된다고 한다.


미국산 소고기의 안전성 논란에서 미국현지의 미국인과 재미교포들이 멀쩡히 잘 먹고 있다는 사실은 수입 찬성 측의 주요 논거였다. 미국 현지 소비자들의 입장은 주목받았고 대변됐고 공감됐다.
어떤 목소리가 들리는가. 어떤 목소리가 반영되는가.
소고기 문제에서 수출국 미국 국민의 목소리는 반영돼도 수입국 한국 국민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는다. 중국산 제품의 위험성에서 수입국 미국 국민의 목소리는 들려도 수출국 중국 국민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결국 어떤 언설이 주목되고 어떤 입장이 고려되느냐는 그 가치와 중요성을 넘어 항상 권력의 문제가 개입돼 있다. 국가 간에도 그렇고 개인 간에도 그렇다. 권력은 항상 마이크를 잡는다. 논리를 유포할 여론 유통망을 장악할 수 있고, 근거를 공급할 소위 전문가집단을 동원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반대논리를 무화할 수도 있고 무시를 통해 조용히 사라지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청계광장의 촛불은 잃어버린 마이크를 찾고자 한다. 묻혀버리고 무시당한 다수의 목소리를 대변하려고 한다. 빼앗긴 마이크는 돌아올 것인가. 오랜만에 돌아온 물대포와 전경의 군홧발을 뚫고 돌아올 수 있을까.
소고기는 이미 민주주의의 문제가 됐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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