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삶- 혜원 스님]나의 ‘참’을 찾아서

2008.12.11 00:00:00

불교엔 여늬 종교와 달리 유일신이나 절대자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스승이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에 대한 가르침과 그것을 따르는 수행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종교로서의 불교를 믿는다는 것은 절대자에 대한 헌신이 아니라 진리를 믿고, 진리를 배우는 서원과 수행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불교에서 말하는 구원은 자기가 자기를 구원하는 것, 마치 넘어진 사람이 제 힘으로 딛고 일어서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불교의 의식이나 수행법 속에는 부처 보살과 같은 절대자와 유사한 개념의 숭배대상이 있고 기도나 복을 비는 행위 등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는 ‘깨달은 이"라는 뜻이고 모든 세상의 스승으로서 추앙을 받는 것이지 유일신이나 절대자로서 숭배되는 것은 아닙니다.


‘불"은  결코 무너지거나 사라지거나 하지 않는, 그리고 늘지도 줄지도 않는 영원한 생명의 법을 뜻하며 ‘교"는 잠시도 쉬거나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돌아가는 세상의 이치, 나고 죽는 삶의 도리를 의미합니다. 고로 불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누구라도 그러한 진리를 깨우쳐서 부처가 되도록 이끄는 여러 말씀과 수행 방법들입니다. 그런데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집을 떠나 공부 길에 들어서셨을 때 무엇부터 참구하셨는가 하면 바로 ‘나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나"는 말할 것도 없이 이 우주의 주인이요 중심점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없다고 할 경우 이 우주라는 세계가 무슨 의미가 있겠으며 내가 없다고 할 경우 나와 연관된 세상의 모든 일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나"라는 이름을 가지고 ‘나"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누구인지 그 정체를 안다면 다른 존재로서의 ‘나"도 대강 알아지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내가 나를 모르고서야 바깥 대상을 어찌 알겠으며 알아본들 무슨 대수이겠습니까? 그리고 그 많은 바깥 대상들을 어느 세월에 다 알 수 있겠습니까?


따지고보면 저 개구리 알 하나의 비밀도 다 밝혀내지 못하는 게 현대과학의 현주소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는 문제를 각자 터득하도록 가르칩니다. 불교의 모든 가르침은 결국 이 문제 하나를 깨우치게 하는 데 집중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내가 누구긴 누구냐? 내가 나이지 뭐란 말이냐?"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봅시다. 정말로 내가 누구인지 속속들이 잘 압니까? 내 몸 구석구석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또 내가 원하는대로 내 마음이, 내 몸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때로는 내가 왜 이러는지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자신이 자신을 대상으로 삼아 자기를 이겨야 한다는 극기의 다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내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고 장차는 어디로 갈 것인지를 훤히 안다고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불교에선 나의 ‘참"을 찾는 것을 가르칩니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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