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호 월요 시론] 환자를 많이 본다는 것은…

2009.10.05 00:00:00

월요 시론


박용호 <본지 집필위원>


환자를 많이 본다는 것은…

 

지난 5·6월 치의신보에선 ‘불황 없이 잘 나가는 치과, 그들만의 경영비결은’이란 기획기사 시리즈를 내보냈다. 극히 일부이겠지만 혼자서 하루 70명의 환자를 진료한다는 엄청난 체력의 원장이 있는가 하면 수입도 대단해서 연매출이 보통 치과의 네, 다섯 배에 달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루 70명이면 6, 7분에 한사람을 꾸준히 진료해야 하는 형편인데, 원장이 무슨 자동화된 로봇의사도 아닐진대 놀랍기만 하다. 의술이 출중하고 사람을 끄는 품성 때문에 가능하겠지만 매일 그러다간 우선 몸이 배겨날지 의문이다.


사실, 치과 하루 내원 환자 숫자는 원장과 직원만이 아는 대외비이다. 내원 숫자로 어느 정도 그 치과의 수입이 유추되는지라 어지간히 친하지 않고서는 서로 묻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런 민감한 부분을 기획기사로 다룬 기자와 취재에 응한 원장은 용감하다. 물론 선한 의도로 경제 위축된 이 시기의 개원가에 활력을 일으킬 아이디어를 주고자 한 의도는 이해하지만 ‘대량진료’는 자칫 역기능과 부작용이 우려된다.


우선 기자나 일반인에게는 이해가 안되겠지만, 치과는 의료 특성상 환자를 많이 그리고 빨리 본다고 그 의사가 꼭 좋은 의사는 아니다. 우선 과잉진료의 경향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험규정의 틀 안에서 진료량과 회수를 늘리는 방법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거북하지만, 사실 이런 경향은 말도 안되는 낮은 의료수가로 의료인을 옥죄는 건강보험제도 때문이다.


둘째로는 체력 문제이다. 그런 박리다매식, 프로레타리아적인 노동력에 의존하는 것은 아무리 일체유심조라지만 스스로를 서글프게 만든다. 물론 개인적인 능력의 차이가 많아 언급이 조심스럽지만 사회주의 국가 의료인을 닮아가는 듯하다.


셋째로 대량진료는 심사평가원이나 보험공단에 오해를 줄 수 있다. 그들은 이런 극소수의 원장들의 예를 들어 “이렇게 환자도 많이 보고 수입도 많이 올려 경영을 잘하는 원장들이 있는데, 왜 진료수가가 낮다고 하느냐?”는 빌미를 줄 수 있다. 발상의 전환으로 틈새시장을 개척한 원장들의 안쓰러운 분투는 가상하지만 결국은 지지부진한 수가인상으로 동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마지막으로 환자의 마음에 대한 배려를 할 여유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하루는 친한 초등학교 동창이 진료 받으러 왔다. 개천에서 용이 난 격의 대학교수인 그는 성격도 원만하고 술도 좋아하고 다재다능한 편인데, 진료 후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자기부인 이야기를 꺼냈다. 갑상선 질환으로 모 대학병원에서 몇 달째 진료를 받고 있는데, 도무지 차도가 없고 무엇보다 화가 나는 것은 오래 기다렸다가 어렵게 본 그 특진교수가 컴퓨터 자막만 보지 대화는 커녕 눈도 안맞춘다는 것이었다. 애들 같으면 한 대 꿀밤이라도 때려주고 싶단다. 그의 심정도, 또 매일 똑같은 보험진료와 강의와 연구에 억눌려 있을 그 교수도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웃으며 병원에 얼마를 내느냐고 했더니 진찰에 약타면 일이만원, 검사하면 오만여원 이란다.
“미국은 진찰만도 100여 불의 진료비가 나오는데 그런 저수가의 보험진료비에 수많은 환자에 시달리는 의사가 의욕이 나겠는가?” 저수가의 우리현실을 지적해 준 뒤 그래도 좀 현실적인 노하우를 알려주려고 “같은 교수끼리 뭘 그러나~ 양주라도 한 병 가져가고 자네 명함이라도 건네며 부탁을 해보지. 그리고 병세가 궁금하니 말씀 좀 자세히 듣고 싶다고, 눈길도 안주시니 좀 서운하다고 진지하게 직설적으로 얘기하라고 편법을 일러 주었더니 뭔가 알아차린 듯 했다.


환자를 많이 보는 대학병원의 풍경이 결국 환자, 의사 모두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모습을 서술해 보았는데, 그렇다고 이글은 환자를 많이 보는 의사를 폄하하거나 시기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필자도 한번 점심도 거르고 40여명의 환자를 본적도 있고, 예약제도 안하고 환자를 한 두 시간씩 기다리게 한 것이 다반사였으며 한때는 15분 간격으로 예약하다가 지금은 30분 내지 한 시간 간격으로 예약을 하는 과정을 밟아왔다. 그래서 환자를 많이 본다는 그 자체가 의사 본인의 체력과 정신건강에 그리고 경영 상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잘 안다.
환자 수가 늘수록 수입은 당연히 증가하지만 본인의 건강과 진료의 질이 어떠한가는 개원의가 평생의 화두로 생각해 볼 문제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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