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선|칼|럼| 청령포의 觀音松(관음송)

2009.10.15 00:00:00

황|규|선|칼|럼|


  청령포의 觀音松(관음송)

 

영월은 열두 살에 왕위에 오른 단종대왕이 삼촌인 수양대군에게 쫓기며 귀양살이 하다가 열일곱 나이에 사사된 애달픈 역사의 땅이다.
 단종이 귀양 살던 청령포 라는 곳은 삼면이 깊은 강으로 둘렸고 한쪽은 험한 절벽으로 막힌 절애의 孤島(고도)같은 곳이다.


청령포의 소나무 숲에는 단종이 기거했던 삼간두옥이 있고 그 인근에 단종이 걸터앉아 쉬었다는 낙낙 장송이 우뚝 서 있다. 거금 육백년이 넘었을 이 거송은 두 줄기 아름드리로 창공에 치솟아, 뭇 나무들을 제압하고 있는데 마치 제왕이 조정신하들에 둘러싸인 모습과 같다하여 觀音松(소리를 보는 소나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왕의 말씀을 잘 들으려고 왕을 향하여 서 있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청령포에서 오리 남짓 지근거리에 있는 장능(단종대왕능)의 소나무 역시 장능을 향하여 굽어 있는 모습은 관음송을 향한 소나무들과 그 모습이 비슷하다. 그리고 이 두 곳의 소나무들은 멀리는 한양을 바라보는 듯하여 좋은 이야기 거리가 되었으리라.


 황량한 적소에서 한양의 소식을 간절히 기다리던 단종의 가엾은 마음은 나부끼는 솔바람 소리에도 하염없는 눈물을 지었을 것이다. 이로 인하여 觀音松이라는 애달픈 이름이 붙게 되었을 것이다.
정치권력에는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는 상 싶다. 요즈음 정가에서 벌어지는 꼴을 보면 일 같지도 않은 사소한 허물을 들쑤셔서 좋은 인물을 무색케 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자질이나 도덕적인 큰 대목에서는 따져볼 재간도 없으면서 옹졸한 제 눈의 잣대로만 재단하는 속물들을 많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고항에 든 병소는 감히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손톱 밑에 가시하나 잘 뽑았다고 우쭐대는 돌팔이와 무엇이 다르랴.


절해고도에서 한양소식을 기다리던 단종에게는 그 한양소식이 오히려 비극을 한층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단종의 유패를 애달피 여긴 의로운 선비들이 철리 험한 길을 마다않고 청령포에 문안인사 드린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유생들의 청령포 출입이 잦음을 알게 된 세조의 측근들에게는 이런 호재를 놓칠 리가 없는 것이다.
이들의 해후를 빌미삼아 단종 복원운동이라고 들씌워서 사육신의 난리가 벌어진 것이다. 청령포에 드나든 선비들이 어떤 구체적인 음모가 없었다 하더라도 세조를 둘러싼 권신들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어디 있을 것인가.


결국 사육신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사약을 받게 되고 단종대왕 마저 희생시킨 것이다.
반 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사육신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가 말끔히 끝맺지 못한 것을 보면 정치음모에는 역사적인 시한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 오죽하면 부관참시를 하면서까지 울분을 설욕하는 보복의 악순환이 있지 않았던가.


요즈음 정가에 벌어지는 양상을 보면서 觀音松의 회한을 짚어봄은 허황한 일은 아닐 것이다. 미래를 바라보는 지도자의 시각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正見이여야지 어떤 개인이나 패거리의 편견에 좌우 되어서는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꼬집어 실례를 들자면 세종시(世宗市)에 대한 논란은 시간적으로는 미래를 봐야하고 공간적으로는 충청도를 초월해서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20세기의 석학 아놀드 토인비는
“미래를 예견하지 못하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고 명언을 남긴바 있지 않은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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