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시론/이무건] 세파라치, 과연 옳은 제도인가?

2009.11.09 00:00:00

이 무 건 <본지 집필위원>


세파라치, 과연 옳은 제도인가?

 

정부는 지난 9월 22일 국무회의를 열어 의사, 치과의사, 변호사 등 고소득 전문직자영업자가 건당 30만원 이상을 현금으로 거래할 시 반드시 현금영수증을 발급토록 의무화시켰다. 만약 소비자가 현금영수증을 발급받지 못했을 경우 국세청에 신고하면 포상금을 받을 수 있도록 했으며, 진료비 전액을 벌금으로 징수해 신고자에게 진료비의 20%를 포상금으로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법안과 관련해 정부 측에서는 앞으로 2년간 한시적으로 운영하며 주로 현금사용을 유도하는 병의원이 집중감시 대상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세파라치 제도가 정부의 바람대로 고소득 전문직자영업자들의 세금탈루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대하는 만큼의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 부부사이에서도 감추어둔 소득을 찾아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닐진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세금탈루를 하려 드는 이들 앞에서는 그리 큰 효용성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오히려 성실납세를 하고 있는 대다수 의료인들에게 불편만 끼칠 공산이 크다.


선진국 전문직자영업자의 평균 소득신고율은 대체로 70~90%수준이라 알려져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2000년에는 53.9%에 그쳤으나, 2005년 64%로 상승했고, 2007년에 이르러서는 73.7%까지 높아졌다. 이 73.7%란 수치는 결코 나쁜 성적이 아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채 10년이 걸리지 않아 50%초반에서 70%중반까지 수직상승했다는 사실이다. 성실납세가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런 고무적인 상황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온 이 세차라치 제도는 우리나라 의료인 모두에게 당혹감과 자괴감을 안겨주고 있다.


의료인의 탈세방지를 위한 우리나라의 제도와 행정은 상당히 잘 정비되어 있다. 세무공무원은 국세청에 가만히 앉아서도 의료인들의 소득을 거의 추정해 낼 수 있다. 소득을 파악할 수 있는 다양한 자료와 방법이 확보돼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타고 다니는 자동차의 차종은 물론 해외여행의 횟수까지도 알아볼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따라서 굳이 이런 무리한 제도를 도입하지 않고서도 충분히 의료인들의 탈세 여부를 감지해 낼 수 있다.


이 세파라치 제도는 특정 직업군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데에도 큰 문제가 있다. 특정 직업군에 대해서만 불이익을 안겨주는 제도로서 헌법에 보장된 평등의 원칙에 위배될 뿐 아니라 국민들에게 특정 직업군이 탈세의 주범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현재 우리나라 사회 전반에 걸쳐 이 파라치 제도가 너무 확산돼 있다는 사실이다. 세파라치를 제외하고도 10여개가 넘게 작동 중에 있다. 이런 파라치 제도의 남발로 인해 건전한 시민정신에 바탕을 둔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본래의 취지는 퇴색하고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 측면이 더 크다. 오죽하면 이들 파라치들을 교육시키는 학원까지 생겨 성업 중이겠는가! 이런 파라치 제도의 무분별한 도입은 전 국민을 감시자인 동시에 감시대상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조선시대의 ‘5가작통법’이나 북한의‘5호담당제’를 부활시켰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이다.


이제부터는 정부 측에서도 이런 파라치들의 신고에 기댄 부정적인 방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납세자들에게 공제혜택을 넓히는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성실신고를 유도해 나가야 할 시점이다. 동시에 세금에 대한 국민적 정서를 바꾸려는 노력도 펼쳐야 한다. 더 이상 고액의 세금을 내는 전문직자영업자들을 소득탈루나 일삼는 범죄 집단으로 매도하지 말고, 많은 세금을 납부해 우리 사회를 풍요롭게 해주는 존경스러운 사람들이라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어주는 데 앞장서야 한다.


사회통합을 부르짖는 작금의 현실에서 우리나라 6백만 자영업자 중 어느 직종보다도 소득신고율이 높은 의료인들을 대상으로 한 이런 세파라치 제도의 도입은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하리라 믿는다. 이런 어설픈 채찍보다는 성실납세를 유도할 수 있는 당근이 더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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