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아동의 부모가 되어 보자

2010.01.25 00:00:00

김 신 <본지 집필위원>

 

장애아동의 부모가 되어 보자

 

말의 뉘앙스가 좀 이상할지 모르나, 이것은 장애 아동을 가진 부모의 입장이 되어보자는 뜻이다. 장애아동에 대한 복지정책이 과거에는 격리 수용, 특별 교육 위주였기 때문에 전국 각지에 소위 각심학원, 복지원이라는 기관이 있었다. 그러나 현대적인 개념에서는 이들을 격리하여 특별 대우할 것이 아니라, 비 장애인과 함께 일상생활을 하도록 하여 사회로 복귀시키자는 생각이 주류를 이룬다. 그래서 고도의 장애인을 제외하고는 비 장애인과 함께 살 수 있는 사회 기반시설을 제공하고 있다. 집앞의 보도 블록이나 아파트 엘리베이터의 단추에도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이미 들어와 있다. 사회가 이들에게 비 장애인과 함께 살 평등한 기회를 주는 것이 궁극적인 복지이고 그 판단에 기초한 당연한 사회적 비용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요즈음은 장애 아동이 엄마의 손을 잡고 개인 치과의원에 나타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이 가진 치과적 문제에 골몰한 나머지 부모와의 의사소통에 상대적으로 소홀해 지는 경향이 있다. ‘장애인 치과학’ 하면 의례히 장애인들이 가진 치과적 문제점을 연상하게 되지만, 여기에서는 장애아동을 둔 부모들의 심리적 단면에 관해 생각해 보는 것이 이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집안에 새로 태어난 아기가 장애를 가졌다는 진단을 받고부터 하늘이 무너지는 쇼크는 시작된다. 가족 한 사람의 장애는 가족 전체를 뒤흔들고 극도의 긴장상태에 직면하도록 만들어, 그 장애에 대한 다양한 적응단계를 경험하게 된다. 이 새로운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격분, 흥분, 좌절, 절망, 증오, 원망, 도피, 수치 등의 감정을 겪으며 그 조정과정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장애아동을 가지게 된 부모들은 흔히 다음과 같은 세 단계의 심리적 변화를 거치게 된다.


첫 단계는 격분과 충격의 해체기이다. 이 단계 동안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자제할 수 없고 감정을 조절하기 어렵다. 넋이 나간 상태라고 표현될 수 있다. 의료진의 판단을 의심하여 세상에 유명하다는 의사들을 한없이 찾아다닌다. ‘내게 이런 불행이 올 리 없어’, ‘사실이 아닐 거야’, ‘지금껏 남에게 욕들을 짓 안 하고 살았는데, 내게 이런 벌을 줄 리 없어’ 라는 생각이 가득 차 있다.


대부분의 부모는 둘째 단계, 즉 재통합기로 들어간다. 이 시점에서 그들은 명백한 방어적 자세를 보이게 된다. 아이에게 도움이 될 수 없는 일체 사람들과의 접촉이나 교제를 차단하고 두문불출한다. 누구에게도 아이를 보여주지 않는다. 깨어있는 거의 모든 활동시간이 어린이를 훈련시키는데 소모된다. ‘다 소용없어’ 라는 생각으로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스스로 유폐하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며 우연히 부딪히는 타인에게는 적개심을 드러낸다. 장애를 수용하고 진정으로 파악하는데 있어서의 스트레스가 전혀 경감되지 않은 상태이다.  


마지막 단계, 즉 성숙적응기에 들어서면, 비로소 부모들은 현실을 직면하고 체념하게 된다. 그들은 건설적인 태도를 회복하며 불필요한 스트레스로부터 고통을 당하지 않으면서 살 수 있게 된다. 바로 이 단계에 들어서야 비로소 그간 돌보지 못해 상한 아기의 치아를 치료하기 위하여 치과의원을 찾게 된다.


장애아를 가진 많은 부모들은 이러한 세 단계를 거치면서 나아진다. 간혹 각 단계가 분명하지 않을 수도 있고 조정에 소요되는 시간도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진정으로 불행하고 중대한 문제가 되는 것은, 성숙 또는 적응에 실패하여 첫 단계인 해체기나 둘째의 재통합기에 정체되어 있는 부모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다.


치과의사가 이런 상태의 사람들을 맞을 경우 주의할 점이 있다. 성숙 전 단계에 머물러 있으면서 치과의원에 아이를 데려 오는 경우는 드물지만, 어린이의 구강상태는 대개 극도로 불량한데도 부모의 주 관심은 아직 장애 본질에 몰려 있고 치과적 문제는 염두에 없기 때문에 우리의 전문적인 개입을 중시하지 않으며 만사를 자기 위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가할 수 있는 치료적 접근에 거부 행태를 취하며, 의료진에게는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이들이 성숙, 적응 단계로 진입하도록 끈기있게 설득을 하는 것이 우리가 이들을 진정으로 돕는 길이다. 무엇이 진정으로 아기를 돕는 길인가를 말이다. 


우여곡절 끝에 다행히 성숙 단계에 들어선 부모를 맞이할 경우, 우리는 이들에게 마음으로부터 우러난 박수와 찬사를 보내주어야 마땅하다. 일생일대의 충격과 난관을 이겨낸 인간승리의 주역들이기 때문이다. 장애 어린이를 데리고 외출할 수 있고 특히 치과의원에 데려왔다는 사실 그 하나 만으로도 그들은 이미 훌륭한 부모이며, 의료인으로부터 특별한 대접을 받을 충분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김 신 본지 집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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