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엣지있게 교정 잘하더라도

2010.02.08 00:00:00

월요 시론


 박용호 <본지 집필위원>


아무리 엣지있게 교정 잘하더라도

 

“ 아저씨… 저, OO인데요…”
진료 중 받은 오촌 조카의 급작스러운 전화에 아무리 오래간만이라도 어려서부터 각인된 혈육의 음색이 친숙하다. 쌍둥이로 태어나서 예쁜이로 온 집안의 귀여움을 독차지 했고, 이제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어려서 이대입구에 있던 조카의 집에는 미제과자가 끊이지 않았고 그 당시는 귀하던 크리넥스 화장지를 물 쓰듯 했으며 나에겐 방의 침대가 생소하기만 했다. 그런데 뒤늦게 교정치료를 받고 여러 문제가 생겼단다. “ 아니, 네가 교정을 할 정도가 아닌데. 미리 의논이나 하지~” 증상을 줄줄이 이야기 하는데 아무래도 너무 황당하고 장황되어 직접 한번 오라고 했다.

조카를 본 것이 이년 전인가. 집안 경사에도 참석 못할 정도로 몸이 안좋다기에 일요일 오후 잠깐 들렀었다. 어둠침침한 좁은 저층 아파트. 늦더위가 한창이었는데도 발이 시리다고 털양말을 신고 화장기 없는 하얀 얼굴로 어색한 미소만 지었다. 류마티즘으로 여기저기 관절마다 아팠는데 그래도 이젠 많이 나았다고. 말 없이 주스를 내온 딸이 오랜 병간호에 성숙해진 듯 오히려 더 듬직하게 느껴졌다.


며칠 후 내원한 조카는 차분한 얼굴이었는데, 어려서의 작은 얼굴의 동안(童顔), 경박(輕薄)미(美)가 아닌 성숙한 여인의 모습이 들어왔다. 입안과 얼굴을 진찰해 보니 가지런한 배열과 교합도 좋고 턱과 얼굴뼈의 균형도 정상이었다. 사실 전화를 받고서는 “어느 치과의사가 엉터리 진료를 한 모양이구나. 여차하면 진단서라도 써주어 조카를 도와주어야겠다”생각했는데 예상과는 딴판이라 맥이 풀렸다.


그런데 조카는 여러 증세를 호소했다. 머리가 항상 아프고, 두 눈이 교대로 돌출하듯이 아프고, 광대뼈가 좌우 틀리고, 비강의 크기가 다르고, 턱관절도 이상하다고 했다. 인터넷으로 많은 지식을 얻은 듯, 여러 의학상식을 곁들여 풀어 놓는 것이 이치에 맞는 것 같다가도 말이 끝이 없는 것이 무언가 좀 이상했다. 급기야 교정을 한 치과에서 가져왔다고 CD로 화면을 집착적으로  설명하는 조카에게 역효과가 날걸 알면서도 우울증이 좀 심한듯하니 우선 약을 잘 복용하도록 말할 수밖에 없었다.


조카는 그 후에도 간혹 집으로 치과로 전화를 해 왔고, 나도 염려가 돼 전화를 하기도 했다. 한번 전화하면 삼십분이 보통이고, 자기 말만 하고, 기억력이 많이 없어졌다고 했고, 휴대폰 문자 응답이 늦었다. 그러나 전체적인 인지능력은 정상이었다. 그리고 교정 치과의사에 적개심을 많이 토로했다. 이른바 ‘전이현상’을 보였다. 자기가 류마티즘 병이 있는데 왜 무리하게 교정을 시작해 주었느냐는 것이었다. 그 의사에게 호소해도 진지하게 잘 들어주지 않고 다른 과로 가보라고 했단다. 시도 때도 없이 장시간 들어주는 것은 고역이었지만 우울증에 도움이 될까 싶어 들어주다가도 마침내 화를 내기도 했다. “네가 문제이지, 그 교정의사는 아무 잘못이 없다.”
다니던 치과의 위생사가 교정장치 끼운 것을 보고 무엇에 씌운 듯 따라 한 것이 후회스럽다고도 했다.


 어느 날, 숨 가쁜 힘없는 목소리로 모 대학병원에 입원을 했다고 전화가 왔다. 호흡곤란으로 밤새 고통에 시달렸고 두려운 나머지 이대로 죽는 것이 아닌가 무서워 괴롭다고…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내과를 거처 신경정신과에 의뢰되었다고 한다. 짐작컨대 ‘공황장애’였다. “사십대 인생 잘 헤처 나가야할텐데….” 걱정되어 며칠 후 문병을 갔다. 창밖 공원을 내다보며 간간이 이야기하는 눈에는 잿빛 날씨처럼 눈물이 매달렸다.


지금 온 나라에 성형열풍, 교정열풍이 불고 있다. 그 전에는 여대생 위주이던 것이 어린 학생뿐 아니라 중년의 남녀를 가리지 않고 있다. 어느 여류 작가가 “요즘 계급을 나누는 것은 집이나 자동차 이런게 아니라 피부와 치아”라고 일갈한다. 교정이 아무리 잘 되었어도 환자가 불만족하면 실패한 것이다. 환자의 비밀을 끄집어내 미안하고, 조카야, 빨리 낫기를 빈다.
조카를 진료하느라고 애쓴 원장님께 감사드립니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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