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시론] 梅一生寒不賣香

2010.03.08 00:00:00

월요 시론


 김재성 <본지 집필위원>


梅一生寒不賣香


이제 3월, 새로운 봄이 시작되려는 것을 시샘이라도 하듯이 갑작스레 닥친 꽃샘추위는 몸과 마음을 움츠려들게도 하지만 이런 날씨가 지난 겨울의 미진한 것들을 돌이켜 보게도 하고, 더구나 때 아닌 춘설이 내려 눈발 날리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니 불현듯 매화의 내음을 떠오르게 한다.
매화는 사군자의 하나로 그 중에서도 으뜸의 자리에 있으며, 만 가지 꽃을 거느리는 꽃의 제왕으로 칭송되는데 그 매화에 관한 글로 梅一生寒 不賣香 (매일생한 불매향)이라는 구절이 있다.


“매화는 평생 추위에 떨어도 향기를 팔지 아니한다.”는 뜻이 담긴 글로 조선의 학자 신흠(申欽)이 쓴 “野言”에 나오는 칠언절구의 한 대목인데 이는 선조의 사돈이었고 인조반정의 중심에 있었던 그가 진정 그렇게 살았다는 건지, 아니면 그렇게 살고 싶었다는 것인지는 정확하게 확인 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청빈한 삶을 살았던 그의 글귀가 지금의 나에게도 가슴에 와 닿는다.
사군자와 세한삼우, 즉 매화, 난초, 국화, 그리고 대나무와 소나무를 일컫는 말로 이들이 생긴 모양이나 생활 습성이 고상하고 고결하며 절개가 있어 선비들이 가까이 하며 감상하고 즐겨 그리기도 했다.


매(梅), 이른 봄에 추위를 무릅쓰고 그 꽃을 피워 맑은 기상을 나타내었고,
난(蘭), 무더위 속에 산골짜기에 홀로 피어나 고운 향기를 퍼트리며 고결함을 상징하고
국(菊), 가을의 찬 서리에도 굴하지 않는 국화는 정절을
죽(竹), 사시사철 푸르름을 잃지 않고 겨울에는 더 푸르러져 지기에 변함없는 절개를 표현한다.
이런 사군자(四君子)는 덕과 학식을 갖춘 사람의 인품에 비유되었고 선비가 글을 배우고 덕행을 쌓아 궁극적으로 다다르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들의 품성을 닮은 군자(君子)이다.


더불어 매화는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맨 처음 꽃을 피우기에 소나무, 대나무와 함께 세한삼우(歲寒三友)로도 불리는데 이 또한 어떤 역경과 고난도 참고 이겨내는 선비의 높은 지조를 상징한다.
예부터 군자에 대한 인식은 그 신분보다는 고매한 품성에 의한 인격적 가치로서 존경되었기 때문에 사군자를 그릴 때도 대상물의 외형보다 그 자연적 본성을 나타내는 것이 더 중시되었고, 문인사대부들은 사군자의 형상 너머에 있는 정신과 뜻을 마음으로 터득하여 마치 시를 짓는 기분으로 추상적인 구도와 모든 색이 함유되어 있다는 수묵의 표현적인 붓놀림을 통해 속기(俗氣)없이 진솔하게 그리는 경지를 높게 여겼다.


다시 말해 사군자 그림은 외형의 단순한 재현이나 형식의 답습이 아니라 대상물이 자라고 성장하는 자연의 이치와 조화의 정신을 깊이 생각하면서 느껴진 자신의 감정과 마음의 정서와 뜻을 표출하는 화법을 통해 가치가 추구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사군자 그림은 동양화나 수묵화의 핵심적 의미를 지니며 마음을 수양하고,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매체로서 널리 다루어져, 이 사군자가 그림뿐 아니라 동양문화의 정신과 가치를 집약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많은 지사들이 매화를 찾는 것은 군자의 유교적인 의미의 군자(君子), 도교적으로 매은(梅隱)과 함께 불교적으로는 심우(尋牛)와 같은 느낌을 주는데 이는 불가에서 소를 찾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찾아가는 처절한 몸부림이고 자기 성찰의 뜻이 들어 있는 것이라고 한다.
이렇듯 그저 매화꽃을 보기 위해서라면 호남오매, 산청삼매 하며 굳이 먼 곳까지 찾아갈 필요는 없지 않을까.


잠깐만 눈 돌려보면 지천에 깔린 것이 매화이고 매실 밭이다. 더불어 주머니 속에서 꼬깃거리는 천 원짜리 지폐에서 선비의 길을 알려주는 매화를, 지갑 속에 고이 모셔진 오만 원짜리에서는 조선의 정신을 보여주는 어몽룡의 묵매도를 감상할 수 있다.
3월,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는 폭설까지 뿌리며 허세를 부리며 물러서지 않기에, 봄은 잠시 웅크리고 있기는 하지만, 그 추위와 눈 속에서 피어나 저 산 넘어까지 멀리 퍼져나가는 청아한 매화 향에 취하고 싶다.


이번 주말에는 섬진강변을 따라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어올라 꽃 속에 잠기고 그 향기에 취할 수 있는 매화마을과 홍매와 백매가 수백 년을 아우르며 산사를 지키고 있는 선암사의 선암매를 보고 싶다.
나는 저 눈 속에 피는 꽃, 매화를 탐하고 그 매화를 사모한다.
매화 향기를 맡으면 머지않아 찬란한 봄이 온다는 희망을 가질 수도 있고, 아직도 잿빛 겨울날과 같이 나아갈 길을 모르고 어두움을 헤메이는 이 세상에서, 한 순간 일지라도 맑고 그윽한 그 향기가 어찌 그립지 아니한가?
桐千年老 恒藏曲이요 梅一生寒 不賣香이라… 梅一生寒 不賣香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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