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 붐 세대 치의, 주눅 들지 마라

2010.03.29 00:00:00

월요 시론

 박용호 <본지 집필위원>


베이비 붐 세대 치의, 주눅 들지 마라


기다려지는 모임 중에 고교 동창들과 토요일 오후에 하는 테니스가 있다. 실력이야 군의관때 하던 가락으로 하는 것이지만 즐기다보면 삼십대로 돌아간 듯하다. 그런데 질펀한 저녁식사 후 그전에는 이차로 이어지던 것이 이제는 첫 월급 탄 아들이 맥주를 쏜다고, 대학생 딸이 피자를 사오랬다고 집들을 일찍 들어간다. 그리고 하나 둘 친구의 직업을 모르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다만 막연히 이들이 과거에는 천여 명의 병사를 호령하던 연대장이었고, 온갖 그릇을 팔러 미국을 휘돌아다니던 비즈니스맨이었으며, 공기업의 유능한 부장으로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딱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기가 미안한 시점이 된 것이다.


동창들은 소위 베이비붐 세대(전쟁 후 1955년부터 1963년까지 태어난 사람)의 첫 주자로 은퇴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 콩나물 교실에서 2부제 수업을 했으며 치열한 입시전쟁을 뚫고 중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대학 때는 유신 반대, 신군부 반대 데모로 휴교도 경험한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아버지 세대의 권위에는 못 미치고, 다음 세대인 386세대의 말빨에는 못 당하며 N세대의 인터넷 사용에는 어림도 없다. 진료하다가도 55년도 양띠 생을 만나면 반갑기도 하고 그를 통해 나의 위치를 느낀다.


이 나이의 치의들은 직업은 유지하지만 체력과 의욕은 떨어진 듯하다. 수입은 감소하지만 씀씀이는 커진다. “누구는 개업이 안되어 이전했으며 어느 동료는 페업했고, 또 경영이 어려워 직원을 한사람으로 줄일까 한다는 친구도 있다."


보통의 개원 치의의 인생 만족도는 U자 곡선을 그리는 것으로 생각된다. 처음 면허를 따고 전공의 과정을 마치면 못할 것이 없을 것 같은 높은 자부심과 앞날에 대한 기대로 충천하지만 중년에 들어 개업의 현실과 부딪치고 가족의 부양과 교육에 매달리다 보면 만족도는 서서히 떨어져서 오십을 맞이하게 된다.


 더군다나 다른 분야에 있는 친구들은 고위직, 임원, 사장으로 승진하는데 비해 평생 나홀로 원장으로 같은 일을 반복해야하는 개원의의 일상은 침체기를 맞는다. 레진 큐어링을 하다가도 문득 화창한 창밖을 보면 “평생 치과만 하다가 인생 다 가나” 하는 허망함도 생긴다. 그러다가 그 변곡점이 55세 즈음이 되는 듯 하며 그 이후 자식들의 혼사가 마무리되면서 서서히 상향곡선을 그리는 듯하다. 물론 요즘은 자식들도 평생 돌보아주는 세태라 인생사 문제는 끝이 없겠지만, 일반 친구들은 퇴직 걱정을 해야 하는데 치의들은 그 걱정은 없으니 다행인 셈이다.


흔히 하는 말로 30대의 의사들은 배우기 위해 진료하고, 40대는 명예를 위해서, 50대는 환자를 위해, 60대 이상은 봉사하고 즐기기 위해 진료한다고 하는데 교수직은 어느 정도 맞는 이야기이고 이상적일 것이다. 보통, 개원의가  삼사십 대에 수많은 환자에 치어 경제적 기반을 잡아 놓으면 50까지만 하겠다고 다짐하지만, 막상 50이 되면 할 줄 아는 게 이것뿐이니 60대 정년까지로 연장되고, 60대 선배들의 말씀은 집에서 노느니 재미로 소일거리로 한다고 한다. 수명도 연장되는 추세이니 90대의 현역 치의도 나올 것이다. 무엇에 집착해서 하던 간에 각자의 근기(根機)와 체력에 맞추어 평생 즐겁게 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얼마 전에는 치과 거래 영업사원과 데리고 있던 직원으로부터 연거푸 결혼주례 요청을 받았으나 완곡히 사양했다. 아직 주례를 설만한 연령이란 것이 인정이 안되었고 덕담을 스스로 실천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몇 주 전에 취업한 아들이 “아버지는 몇 살까지 개업할건가” 묻기에 왜 그러느냐고 하니 “그냥…”이란다. 애비를 그때 먹여 살릴라나, 기특하기도 하고 언제까지 밀어줄 수 있나 확인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 내가 이 나이가 되었구나” 감상이 밀려오기도 한다. 성인들의 말씀대로 ‘바로 지금 여기’에 집중해서 이 나이를 빨리 인정하고 이에 걸 맞는 것을 해야 할 텐데 생각도 든다.


그러나 ‘베이비붐 세대’란 용어 자체가 인구, 사회학자들이 지어낸 현상에 불과하며 이들의 고민과 갈등은 누구나 이미 거치고 또 앞으로 거칠 통과의례다. 그러하니 베이비붐 세대 치의들, 주눅 들지 말고 각자의 주어진 길로 무소의 뿔처럼 굳세게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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