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성 월요시론] “또 다시 미수에 그칠 봄바람”

2010.05.03 00:00:00

월요시론

 김재성 <본지 집필위원>


 “또 다시 미수에 그칠 봄바람”


유난히도 춥고 또 봄이 진작 왔어야 할 때인데도 몇 차례나 폭설이 내리고 한파가 오더니만 이제는 주위가 온통 하얗고 붉고 노란 꽃으로 물들이는 완연한 봄이 되었고, 이에 맞춰 주위의 모든 것들이 새로운 채비를 시작하니 나 또한 무엇인가에 쫓기는 듯 서둘고 미진한 것들에 대한 초조감으로 허둥대다 보면 한 달이 하루인 것처럼 지나가 버린다.


슬기로운 조상들은 우리에게 급하면 돌아가라고 가르치면서 바쁠수록 여유로움 속에서 결정하고, 한번쯤은 서로의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며 생활하라는 말을 남겨두었지만  현실에서의 나는 형체를 모르고 잡히지도 않는 조급함으로 인해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잊어버리고 매사에 바쁜 몸짓으로 살아가는데 이는 짜여진 틀 속에서 빠져 나오고 싶은 마음은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루 하루의 일정과 약속에 묻혀 여유를 가질 진정한 용기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 “복잡한 현실 속의 나를 잊고 단 하루라도 푹 쉬면서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해 본적이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지만 이를 실행해 본적이 얼마나 있으며, 또 이런 생각을 해본 사람이, 이런 생각 속에서 하루하루를 지내는 치과의사가 어찌 나 혼자뿐일까?


국민학교, 지금은 초등학교로 그 이름이 바뀌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날마다 인 것 같은 시험으로 긴장과 초조로 보내야 했던 입시지옥과 방학도 없이 연속되는 재시험은 내 학창시절의 전부였고 그래서 치과의사가 되었을 때의 기쁨은 이제 그 길고 힘들었던 시험의 터널을 빠져 나온 해방감과 함께 밝은 미래가 보장되어 있다는 막연한 기대로 부풀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나를 기다리고 있는 현실은 매달 돌아오는 결제 때문에 한 달이 가는 것을 알고 소득세를 내면서 일 년이 지난 것을 느껴야 하는  참담한 세월을 이십 수년간 보내고 있으면서도 어찌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원망하고 자책하는 사람이 동료들 중에서 오직 나 혼자뿐일까?


졸업한지 30년. 그 동안 병원 늘리랴, 애들 가르치랴, 집 넓히랴, 시시각각 다가오는 경제적인 일들을 초인적인 감각과 능력으로 그때그때 처리하면서 돌이켜 본 내 인생은 외바퀴 자전거처럼 후진할 수는 없고 앞으로 계속 나가지 않으면 쓰러져 버리는 인생을 살아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고 가끔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하고 돌이켜 보면 지금의 자리가 또 다른 출발점이 되어 서 있는 나를 본다.


다들 너무 바빠서 뒤를 돌아 볼 여유가 없다는데 불확실하기는 하지만 앞으로 있을 것 같은 즐겁고 흐뭇한 일을 생각하는 것보다는 지나간 즐거운 추억을 생각하는 것이 더 아름다울 성싶고, 산에 오를 때 산 정상을 밟는 것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숨이 턱까지 차서 힘들 때 땀을 식혀주는 산들바람을 맞으며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는 것도 또 다른 등산의 즐거움이리라.


하여튼 지금쯤은 잠시 멈춰서 숨을 고르고, 되돌아 갈 수는 없지만 온 길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여유를 찾아야 할 때라는 생각으로 어디론가 여행을 갔으면 싶고 출발 할 때는 아무런 계획이 없이 나 혼자만의 일주일간의 여행을 가벼운 글을 엮은 한두 권의 산문집과 함께 하고 싶다. 


여행의 목적은 “현실의 나를 잊고 그 동안 잃어버렸던 나를 찾기 위해서”라고 둘러대고 내 스스로에게는 아무런 목적이 없을지라도 그 또한 좋은 여행이다. 라는 마음을 새긴다.
그 짧은 여행에서 나를 찾는 목적을 달성할 것 같지도 않지만 또 찾지 못한다 해서 헛걸음이라 생각되지는 않을 것 같다.  


그 곳에서 만나는 풀 한 포기, 돌 뿌리 하나일지라도 일상에서 보는 것과는 분명 다른 모습으로 다가 올 것이고 나 또한 새로운 경험과 경이로움으로 받아드릴 것이기 때문이리라.
자, 이제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니  머릿속 너저분한 것들은 툴툴 털어 버리고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곳으로 “잃어버린 나, 그 동안 잊고 있었던 나”를 찾아 한번쯤은 떠나보자.
이런 일탈이야 말로  정신건강에 활력소가 되고 더 나은 삶을 위한 초석이 될 진데.
그렇지만 이 봄에도 나의 이런 바람은, 이 봄바람은, 또 다시 미수로 그치고 말런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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