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순희 월요시론] 아름다운 마흔 다섯, 그녀

2010.05.17 00:00:00

월요 시론


 신순희 <본지 집필위원>


아름다운 마흔 다섯, 그녀

 

 아무리 피곤해도 하룻밤 푹~ 자고 나면 몸이 거뜬해지던 기억은 20대가 끝나면서 이미 가물가물해졌고, 아이를 낳고 난 후에는 더더욱 늘 어딘가가 아프다. 허리가 삐끗하거나 등이 뻣뻣하거나 그도 아니면 어느 날은 손목 발목이 시큰거린다. “40대가 되니 노안이 찾아와 보철물 마진도 흐릿해지더라.”던 선배의 말이 결코 농담이 아니었음을, 30대의 끝자락에서 비로소 느낀다. 이제 내 몸은 고장 날 일만 남은건가 싶어 살짝 슬프기까지 하다.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녀의 나이는 66년 말띠, 45살이다. 히말라야의 8000m급 14개 봉우리를 완등한 세계최초의 여성인 오은선 대장은, 나보다 6살 많은 친언니와 동갑이다. 20대에 했던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의 지리산 종주가 인생에서 가장 높았던 기억인 내게, 오대장의 14좌 완등이 어떤 것인지는 상상만으로도 벅차다.


그곳은 어떤 곳일까. 해수면에 비해 산소가 3분의 1밖에 되지 않아 두세 발짝만 걸어도 100m 전력질주를 한 것만큼 숨이 차고, 춥고, 자외선 과잉으로 눈까지 멀게 한다는 8000m 이상의 히말라야는 이미 많은 산악인들의 목숨을 앗아 간 것으로 그 위력과 공포를 짐작케 할뿐, 일반인들로서는 달나라만큼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럼, 마흔 다섯은 어떤가. 불혹을 지나고 인생의 반환점을 돌았다고 할 수 있는 나이, 모든 준비를 마치고 사회적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중년의 황금기, 그러나 체력적으로는 결코 인생의 정점이라고 할 수 없는 나이일 것이다.


그런데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대부분 40대의 산악인들이 해냈다고 한다. 지금껏 단 20명만이 올랐는데 대부분이 40대이며 50대 산악인도 있다. 아인슈타인은 스물여섯에 특수상대성 이론을 발표했고 모차르트도 20대에 가장 왕성한 작곡 활동을 했고 빌게이츠가 MS를 설립한 것도 스무살 때였다. 역사상 빛나는 천재들은 그들의 업적을 주로 20대에 남겼다는데 머리로 할 수 있는 성취는 20대가 정점이고 육체로 할 수 있는 성취는 40대가 정점인건가, 참으로 역설적인 사실이 내 가슴을 쿵 울린다.


20대의 어설픈 산행을 마지막으로 산은 내게서 멀어져갔다. 허리가 아플수록 자가용으로 출퇴근을 했고 목이 뻣뻣할수록 휴가는 리조트 휴양지를 찾았다. 산은 여전히 그곳에 있으나, 그 산은 내게 오지마라 오지마라 했다. 사실은 내 스스로 가지마라 가지마라 했지 싶다. 내 몸이 나이 들어 등허리가 아팠던 게 아니라 내 정신이 나이 들어 손발목이 시큰거렸던 것이다. 아름다운 마흔 다섯 그녀를 보며, 더 이상 나이를 핑계댈 수도 없게 된 부끄러운 나는, 엘리자베스 홀리 여사가 오은선 대장의 14좌 완등을 인정했다는 기사를 보며 문득 히말라야 트레킹을 꿈꿔 본다. 올해가 다 가기 전에 히말라야에 가고 싶다. 아니 반드시 가야겠다. 그곳에서 잃어버린 내 무언가를 찾고 싶다.


앞으로 남은 내 삶에 8000m 급 험준한 봉우리가 몇이나 있을까마는 히말라야에 다녀오면 모두 다 완등해 낼 수 있을 것 같다. 때로는 산소가 부족하고 때로는 발가락을 잘라야하는 고통이 찾아오는 게 우리네 삶이 아닌가. 나이에 얽매이지 않고 봉우리를 회피하지 않고 뚜벅 뚜벅 걸어가는 그런 인생을 살고 싶다. 그러다보면 삶의 끝자락에서 나도 내 인생의 14좌 완등을 어느 분에게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오은선 대장의 14좌 완등이 내 일만큼이나 가슴이 뛰고 기쁘다. 나에게도 아직 꿈꿀 가능성이 남아있음을 일깨워준 아름다운 마흔 다섯, 그녀에게 사랑과 감사를 보낸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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