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힘들어도 극단적 행동은 말아야

2010.05.31 00:00:00

월요시론


 박용호 <본지 집필위원>

 

아무리 힘들어도 극단적 행동은 말아야


올해로 치의가 된지, 또 대학을 졸업한지 30주년이 되었다. 기념행사로 부산에서 1박2일의 여행을 하기로 계획 중이고, 때맞추어 개설한 홈피에는 안보이던 동기들의 소식도 들린다. 졸업 후 한 번도 못 본이도 있고 병사한 동기도 있는데, 유독 그리운 동기 중에 스산하게도 자살한 동기가 있다. 고인에게는 미안하고 부담되지만 막역지간(莫逆之間)이었대서, 후배들은 이런 불운한 일이 없기를 바라며 용기를 내어 이글을 쓴다.


그와는 예과 시절 동해안 여행을 떠났다. 범생 체질이었던 나에 비해 그는 ‘놀 줄’ 아는 친구라 그에게서 유흥을 배웠다. 그는 여행 중 여대생도 잘 불러오고, 가게 평상에서 누구든 죽이 맞으면 바둑을 두는 낙천적인 성향이고 나는 기차시간에 늦을까 염려했다. 개원 초기에 환자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술친구고 대화친구였다.


어느 날 학술대회 기간이라 그의 치과에 들렀더니 그는 옆의 기원에 있었다. 간호원이 환자 왔다고 연락이 오더니 갔다가 오 분도 안 되어 돌아왔다. 부러진 치아 파편만 제거하고 금방 왔단다. 첫 부인과는 애가 안생기고 이혼을 했는데, 재혼을 하고 개업지도 옮기고 동기들을 불러 집들이도 했다. 애기 분유 값도 많이 벌어야하고 패러글라이딩취미도 붙였다고 일신(日新)된 분위기였다. 그런데 얼마 후 기공료가 많이 밀려있다는 소문이 들리고 급료를 빌려달라고 전화도 왔다. 그리고 신경정신과에 다니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때는 정신과에 대한 지식도 부족했고 좀 낯 설은 생각이 들어 그와 사이가 서먹해졌다. 자연 만나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살소식을 들었다. “아”…서둘러 병원에 갔는데 악상(惡喪)이라 이미 상가가 철수한 뒤였다. 절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고, 부조금도 못내고 그때의 허탈감이 지금도 생생하다. 뒤늦게 온 대학동기와 맥주를 마셨으나 그를 좀 더 자주 만나고 위로해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가득 안고 터벅거리며 돌아왔다.


다음 날 심한 감기가 들었는데 간신히 출근은 했건만 환자가 오면 오히려 두려웠다. 지오이만 바르고 약만 주고 사진만 찍으라 하곤 돌려보냈다. 멍~하니 있으면 그와의 일이 파노라마로 펼쳐지고, 일하자니 힘들고 괴로웠다. 벌써 20년이 넘었다.


지금 불명예스럽게도 우리는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로써 하루 평균 35명이 자살하고 있다. 미국 통계이긴 하지만 의사들의 자살률은 일반인보다 두 배가 되며 특히 치의의 경우 더욱 높은 것으로 되어있다. (물론 치과를 일개과로 처리한 오류는 있지만)요즘 세태에서 실감하듯이 자살은 전염력이 무척 강하며, 주변의 최소 6인(부모, 형제, 친구)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고 정신과의사는 말한다.


40대 자살의 32%는 경제적 요인이라고 한다. 일전의 경남 모원장의 사건도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린 것으로 추정된다. 무엇보다도 동종 직업인의 일이고 그것도 치과 내에서 벌린 일이라 참으로 안된 생각이 든다. 이것은 의협의 경우이긴 하지만 개원의 40%가 평균 3억8천의 부채에 시달리고 있다는 통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로 주요한 요인인 우울증은 개원의라면 누구나 언제든 엄습 할 수 있는 유행병이고 만성병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전직 대통령뿐 아니라 그 기가 세다는 정치인, 그룹회장, 고위공무원, 연예인 등 유명인의 자살에 말문이 막힐 지경이니 혼자 외로이 모든 일을 감내해야하는 개원의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금번 시행중인 AGD교육에는 정신과 교육과 자살예방교육이 추가되었으면 한다.


사람이 살다보면 “사람이 이래서 자살을 하겠구나”하는 일을 당할 때가 있을 것이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역설적으로 인간은 누구나 자살할 기회와 명분이 생길지 모른다. 잘 살아가고 잘 늙어 간다는 것은 자살의 망령을 지혜롭게 피해 다니고 극복하는 용기를 갖는 일인지 모른다. 사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죽어야 할 이유보다 살아야 할 이유가 얼마나 많은가. 아무리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이 세상에 ‘나’라는 존재는 단 하나뿐이므로.
40, 50주년에도 모든 동기들이 건강하기를 빈다. 이글에 언급한 두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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