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순희 월요 시론] ‘평화’는 비둘기가 아니다

2011.01.03 00:00:00

월요 시론

 신순희 <본지 집필위원>

‘평화’는 비둘기가 아니다

  

2011년 새해에도 한반도는 여전히, 전통적 국제법상으로 전시상태이다.
정전이 아닌 휴전상태로 수십 년을 살아오면서 조금씩 잊혀져갔던 이 사실은 지난해 11월 연평도 포격을 계기로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다시 각성되었다.


불타오르는 연평도의 민가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해방 후 5년이 지난 어느 초여름에 이 땅의 민초들에게 닥쳤던 그 불행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란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했고 충격과 분노를 느꼈다.


1차 분노의 대상은 당연히 사건을 일으킨 북한의 정신 나간 군부와 지도자들이겠으나 2차적인 분노는 사태를 이 지경까지 오게 만들고도 이후 아무런 대안을 갖지 못한 정부였다. 연평도 사태 이후 정부는 엄중한 경고와 강력한 대응을 천명했으나 실제 우리 국민들이 본 것은 북한과 그 어떤 외교라인도 갖고 있지 못해 중국과 미국에만 사태해결을 매달리는 무능한 외교력, 중국과 러시아에게 연평도 한미 군사훈련을 중지하라는 내정간섭용 발언까지 들어야하는 굴욕적인 외교상황뿐이었다.


적어도 한 나라를 책임진 정부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할 능력과 자존심 그 어느 것 하나 없는 상황은, 집안까지 쳐들어 온 도둑에게 “들어오기만 해봐라, 훔쳐가기만 해봐라, 다시 오기만 해봐라”하며 오로지 눈 흘김과 말잔치로 모든 책임을 회피하려는 무능한 가장과 무엇이 달랐던가.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


하지만 평화는 비둘기가 아니다. 평화는 하얀 옷의 아기천사들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기 쉬운 전쟁의 반대개념으로서의 정적인 상태가 결코 아니다.


R.아롱은 ‘평화란 정치적 단위간의 대립적 폭력형태가 어느 정도 계속적으로 정지되고 있는 상태’라고 정의했다. 인류역사에서 전쟁이 차지하는 기간이 평화가 차지하는 기간보다 더 길다는 사실이 보여주듯이, 평화는 인류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정치세력 간 대립적 폭력형태를 인간의 정치적 능력으로 잠시 멈추어 놓은 치열한 역동적 상태이며, 인류역사에 강물처럼 흐르는 폭력 속에 잠시라도 방심하면 뒤로 밀리는 불안정한 상태일 뿐이다. 평화를 원한다면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처럼 힘찬 동력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고요한 호수를 미끄러지듯 유유히 떠다니는 백조의 수면아래 치열하고 분주한 오리발의 역동성이 필요하듯 조그마한 치과의원의 평화로운 하루를 지켜내기 위해서도 얼마나 많은 원장의 숨은 노력과 끊임없는 갈등 조정이 필요할진대, 하물며 국가의 안녕을 말할 건가.


다행히 이 땅 한반도의 역사에는 평화를 사랑하는 전통이 있다. 세계 유래가 없을 정도의 다양한 종교간 평화적 공존이 그 첫 번째고, 타 민족에 대한 선제 침략의 역사가 거의 없다는 것이 그 두 번째 근거이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오래지 않은 전쟁의 기억은 우리에게 평화에 대한 목마른 갈망을 품게 한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를 배출한 우리는 평화를 지켜내는 것이, 연어가 흐르는 강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것만큼 힘들다는 것도, 그리하여 내게 강 같은 평화가 흘러넘친다면 그 의미가 무엇인지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2011년에는 인간의 정치적 능력이 달성할 수 있는 최고의 역동적 상태인 ‘평화’가 이 땅에 단단히 자리 잡기를, 그리하여 그 너머의 궁극적 평화 상태인 ‘통일’의 여명이 동터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아야 할 것들이 있으리라. 떠오르는 새해 첫 태양이 부디 그곳을 환히 비춰주기를.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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