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호 월요시론] 포탄이 터져 전쟁기운이 돌때마다

2011.01.24 00:00:00

월요시론
박용호 <본지 집필위원>

포탄이 터져 전쟁기운이 돌때마다


1983년, 6월 강원도 현리의 102야전병원에 군의관 복무중 이었다.


오후 진료중 헬기소리가 요란하다 싶었는데 “수류탄 폭발로 대량 전상자가 발생했으니 전 군의관은 응급실로 모이라”는 연속 긴급방송이 나왔다. 헬기가 연병장에 내려와 있었고 고함과 뒤섞여 사병들이 들것으로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야말로 아수라장. 응급 수술순위를 표시하는 빨강, 파랑, 노랑 인식표를 단 십여 명이 응급실 바닥과 베드에 널부러저 있었는데 안면부위 손상 환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 이런…” 처참하다 못해 섬뜩했다. 커다란 파편이 우측 안면 중심부를 강타한듯 했다.


화산이 폭발하듯 눈을 제외한 반쪽 안면이 뒤집혔는데, 광대뼈와 상악골 일부가 날라가고 상악동은 개통되어 훤히 드러나고 비골쪽은 덜렁거렸다. 다행히 안구하벽은 유지되었지만 뇌기저부의 노출과 손상이 염려되었고 어느 부위인지 가늠하기 힘든 공간과 조직이 엉클어저 그 와중에 그레이 아나토미 해부도를 대조해 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호흡은 가쁘고 혈압이 90/50이라는 간호 김대위의 다급한 말에, 가슴에 박힌 다발성의 파편을 방사선 과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응시중이고, 마음이 급했다. 다행히 심장과 대동맥은 피했다고 했다.

  

 머뭇거릴 여유가 없었다. “오케이, 셋트 준비” 응급 수술에 돌입했다. 기도절개 킷트와 치과용 로터리 엔진도 대기시켰다. 파편과 이물을 제거해 가면서 최대한 자연조직을 살려가는 기나긴 긴장이었다. 하얀 얼굴의 미소년 병사는 고통도 없는지 눈을 계속 맞추고 깜박이고 (동공반사는 정상) 석션하는 간호장교의 거의 울듯한 “조금만 참아, 우리가 살려줄게, 살려줄게…” 목소리에 고개를 가날프게 끄덕이기도 했다.


서 너 시간 했나, 그제야 얼굴 형체가 좀 잡혔는데 일반외과 이대위가 미안한듯 암만해도 흉부 파편 때문에 수통(국군수도통합병원)으로 빼야겠다고 한다. 맥이 풀렸다. 다음날 후송군의관이 서울 도착 직전 헬기 안에서 심폐소생술을 했으나 사망했다는 소식을 알렸다. 오열하는 그의 가족과 애인이 연상되어 며칠간 우울했다. 일선 사병답지 않게 얼굴이 유난히 깨끗하던, 아마도 대학 휴학생이었을 그가 지금도 선연히 떠오른다.


지난 연평도 포격사건 때 해변진지로 뛰는 병사, 포탄의 화염 속에서 대응사격을 위해 자주포의 방향을 급선회 시키는 병사를 보노라면 가슴이 울컥해 온다. 부상 장병들의 사진이나 화면을 보면 악안면 손상환자가 보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치과 군의관의 역할이 있었을 것이다. 부상병을 사지에서 옮기는 것은 전우애이고 용기이지만 그들을 실제 살리는 것은 군의관과 간호장교 위생병들의 봉사와 희생이다. 전쟁 외상외과의 참혹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준비된 수술이 아니므로 순간적인 판단력과 순발력을 요구한다.


6·25때 미군은 3000명의 악안면 손상자를 구강외과의가 수술했으며, 대구 육군 후송병원에서 한국군 치과 선배들도 다양한 수술경험을 했다고 한다. 베트남전에서는 헬기와 젯트기 후송으로 기도 절개 케이스가 많이 감소되었다. 수술도 자기가 많이 해보던 분야가 익숙하다. 젊어선 패기와 혈기로 겁이 없어서 뭐든지 해보려고 하지만 진정 환자를 위하자면 평소 이론무장이라도 철저히 해두어야, 일기일회(一期一回)의 마음으로 닥치면 할 수 있다.


얼마 전 아리조나 하원의원 총격사건에서 기퍼즈의원 수술의가 미국 군의관으로 많은 외상환자수술로 경험많은 외상전문의 한국인이라고 한다. 우리는 현재 외상전문 병원이 없고 이들을 보통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소화중인데 다른 소소한 응급환자들 때문에 진료순위에 불이익을 받고 심지어는 떠돌다가 사망하는 불운한 사고도 종종 발생한다. 외상전문병원의 탄생은 필수이고 필연적이며 이것이 실현되면 많은 구강악안면외과의들이 인명을 살리는 훌륭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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