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호 월요 시론] 선배의 폐업

2011.07.11 00:00:00

월요 시론

박용호 <본지 집필위원>

선배의 폐업


지난 겨울, 오전 진료로 좀 바쁜 중이었는데 이웃 선배 치과의 직원이 불쑥 방문했다. 전에 몇 번 선배에게 본인이 진료를 받느라 안면이 있는 직원이었다. 환자분을 모시고 왔는데 크라운을 대신 좀 셋팅해달란다. “원장님이 무슨 일이 있으신가?” 물었더니 주저주저하고는 방에 들어가서 말씀드리겠다고 하는데 안색이 어두웠다. 놀랍게도 며칠 전 갑자기 쓰러지셔서 수술후 중환자실에 계시다고 했다.


그 선배는 키가 훤칠하고 귀공자 타입의 성실한 분이었다. 대학 10년 선배인데, 젊어서 속초에서 개원시는 하루 60명의 환자를 보셨다는 신화를 털어 놓곤 했다. 자제분들도 다 유학시켜서 성공해 출가시키고 재테크도 잘하고 이제는 개업도 슬슬하며 미국 자제분들을 여행삼아 찾아다니며 운동과 건강관리도 열심인 분이시다. 사십대부터 칠십대까지 근처 네 명의 개원의가 매주 금요일이면 어김없이 칼국수집에 모이는데 항상 여행, 역사, 문화에 해박해서 화제를 주도하는 로맨티스트이기도 했다. 잡다한 인생사 문제를 선배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칼국수 모임 때마다 다들 선배소식이 궁금하고 언제 문병을 갈 것 인가 걱정하였지만 심근경색으로 수술을 두 차례나 받는 중환이라 연락이 잘 안되고 조심스러웠다. 어렵사리 서너 달 만에 댁에서 요양 중인 선배와 통화했다. “살아나니 좋으네….” 어눌하지만 밝은 선배의 저 건너의 목소리에 가슴이 울컥했다. 아직 병원에 다니며 재활운동 요법을 한다는 말에 빨리 오셔서 축하회식 하자고 계획했던 말을 꺼내보지도 못하고, 그저 몸조리 잘하시라고 당부하고 맺었다. 


지난 겨울에는 때아니게 환자가 늘었었다. 아마도 선배가 두어 달 문 닫은 탓이었을 게다. 선배가 회복해서 개업도 다시하면 식사라도 대접해드리고 뭐라도 갚아야하는데 아직 선배에게 빚진 기분이다. 그동안 선배와 가까운 주변 분들이 치과를 대신 양도해 주려고 치과 현황을 묻는 전화도 오곤 했었는데, 얼마후 신규 개원의에게 넘어갔다는 소식이 들렸다. 순식간에 간판명도 신세대식으로 바뀌고 사월에 개원한다는 커다란 현수막이 바람에 휘날리고 안에서는 리모델링이 한창인 모양이었다. 누가 또 오나, 궁금증만 쌓였다.


사실, 생존경쟁 현장에서 옆에 개원 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지금도 포화지만 25년 전에도 마찬가지여서 지금의 칼국수 멤버 최고 선배 옆에서 동시에 두 사람이 개원했었는데 그때 선배 기분이 어땠을까 상상이 간다. 그래도 선배입장에선 후배가 신규개원차 인사를 해오면 원망감도 사라지고 동료의식도 생기게 마련이다. 후배들은 선배에게 들르면 선배가 화를 내지 않을까 두렵고 또 바쁜데 공연히 방해만 할 것이 미안해 모른척 할 수도 있다. 어차피 일자리는 창출되어야 하는 것이고 같은 면허장으로 서로 윈윈하며 도와야 할 것이다.


그러던 한 달여 전 궁금해 하던 신규 개원의가 인사차 들렀다. 잘 생기고 전도가 유망해보이는 신혼의 젊은이였다. 덕담을 해주고는 바로 칼국수 멤버로 끌어들였다. 선배의 폐업소식을 접하곤 여성회원도 한분 들어왔다. 또 우리 멤버 중 최고령이신 선배는 올해 은퇴를 계획중이라고 한다. 단골 보철환자를 소개해주시기도 하였다. 세상 모든 것이 변하듯 우리 모임도 변화중이다. 선배가 언제인가 “아버지란 존재는 평생 그저 일만 하다가 가는 존재라고… 평생 사는데 그리 그렇게 큰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닌데….”라고 뇌까리던 것이 다시금 마음에 와닿고 생생하다.


평생 개업할 것인가, 중간에 건강할 때 은퇴하고 새로운 삶을 계획할 것인가는 모든 개원의의 평생숙제이고 정답은 없을 것 이다. 평생개업은 너무 버거운 생각이 들고 준비(불시)은퇴도 남에게는 때아닌 영락(零落)으로 비칠 수 있으니 신경이 쓰일 것이다. 아직은 생각하기도 싫고 두렵지만 나도 언젠가는 병들어 은퇴하게 될 것 이다. 얼마 전 육춘 정신과의사에게서 의미 있는 말을 들었다. 사람이 보통, 사는 자체가 기쁘고, 타인을 도와줄 수 있고,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면 삶이 만족한 것이고, 이중 하나라도 부합되면 삶을 영위한다는데, 글쎄 나의 경우는 개업과 어떻게 결부시킬지 좀더 살면서 생각해보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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