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택 월요 시론] 자신에 대한 글쓰기

2011.11.14 00:00:00

월요시론
허택 <본지 집필위원>


자신에 대한 글쓰기

  

10월 24일 전 세계 동시에 스티브 잡스의 전기가 출간됐다.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됐고 출판계가 들썩였다. 스티브 잡스! 21세기 디지털계의 혁명가인 그가 왜 생의 최후에 비록 대필이지만 아날로그적 전기를 남겼을까? 스티브 잡스가 왜 삶의 흔적을 글로 표현했을까? 만일 스티브 잡스가 말년에 글을 적을 수 있는 건강만 유지됐다면 친필로 자서전을 남겼을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스티브 잡스의 혁명적인 IT 발명으로 21세기 들어와서 문장의 상실이나 종이책의 종말까지 염려스럽게 예언됐다. 필자가 소설가로 등단한 후 간혹 왜 소설을 쓰게 됐는지 주변에서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한 번쯤 일기체의 글쓰기를 해보라는 것이다. 글을 쓰다보면 우선 스스로 깜짝 놀랄 것이다. 글쓰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살아오면서 어떻게 말을 하고 글을 읽어왔는지, 어떻게 문장을 만들어야 할지, 자신의 감정과 사고를 어떻게 표현하고 정리해야 하는지 당혹감을 느낄 것이다.
어느 소설가의 의미 있는 한 마디. “스티브 잡스도 결국 생의 정리를 글로 쓰인 책으로 했던 거야. 아직 책은 인류에게 정신적인 생활필수품인 거지.”


글로 적어가는 과정에서 살아왔던 인생의 기억과 경험들이 새삼 재창조 돼가는 신기함에 스스로 놀랄 것이다. 필기구를 사용하든, 키보드를 누르든, 문장으로 만들어지는 단어 하나하나는 인류문화의 원천임에 틀림없다. 인류 유전자 속에 문장의 형성은 필수인자로 남아있다.


특히 우리는 혜택 받은 민족으로 세계가 인정하는 문화발명품인 한글은 상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한글의 탄생’ 한글판을 펴낸 일본의 한국어학자 노마 히데키 교수는 한글을 ‘소리’가 ‘글자’로 되는 지적혁명이라고 극찬했다. 또한 노마 히데키 교수는 “훈민정음 창제에 따라 한국의 수많은 고유어가 앎(知)의 영역으로 들어왔어요. ‘멍멍’, ‘뒤죽박죽’, ‘욜랑욜랑’, ‘야금야금’ 등 의성어와 의태어도 ‘앎’이 돼 이어졌죠. 이후 한국의 지식세계는 더욱 넓고 깊어졌습니다”라며 한글의 독특한 특성을 강조했다.


우리는 일상 대수롭지 않게 사용하는 한글이 얼마나 앎의 깊이를 가졌는지 알지 못한다. 또한 한글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의 형태가 들어있다. 특히 형용사, 부사 속에 소리의 형태는 뚜렷하다. 그리고 명사와 동사도 형용사와 부사로의 변형이 소리에 의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글은 용음합자(用音合字: 소리를 기준으로 글자를 합침)라는 것이 특징이다.


요즘 SBS TV방송국에서 ‘뿌리깊은 나무’라는 드라마를 방영하고 있다. 세종대왕의 한글창제과정을 역사추리 픽션소설로 적은 것을 드라마화 한 것이다. 드라마 속에서 세종대왕이 소리를 글자로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다. 한글은 익히 알고 있지만 구강구조에서 나오는 여러 소리로 만들어졌다. 치음, 설음, 구개음 등으로 구분되는 것이다. 소리인 말에 의해 글이 그대로 쓰여진다. 용음합자인 한글구조는 민족적 자긍심과 미래 발전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또한 한글은 사고의 이해력을 신속하게 하면서 지적발전을 높여주는 것이다.


한 번쯤 한글로 일기체를 적으면서 읊조려보자. 한글로 적어가는 문장에서 한글이 품어내는 묘한 소리와 뜻을 스스로 받아들이면 정화되는 심정을 느낄 수 있으며, 앎의 깊이가 깊어지는 것을 알게 된다. 가을의 운치에 자신을 담아서 문장으로 만들어 가슴으로 느끼게 되는 것도 디지털 시대에 필수적인 생활습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필기구로 종이 위에 적어가는 한글소리 속에서 금속성 잡음의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기쁨을 한 번쯤 느껴봄직 하다.


필자는 감히 권하고 싶다. 고도의 IT시대에 아날로그적 필기구로 자신을 글로 만들어보라고. 그것도 자랑스러운 한글의 문체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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