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택 월요시론] 쉼표의 인문학

2013.02.18 00:00:00

월요시론
허 택 <본지 집필위원>

 

쉼표의 인문학


필자가 소속돼 있는 부산 중구지부에서 신년월례회 때 모 선배 치과의사가 인문학 강의를 한다는 공문을 받았다. 비록 개인사정 상 참석할 수 없었지만, 매우 반가웠다. 인문학 강의. 치과의사로서 생소한 집회일 수 있다. 더욱이 초빙강사가 아니고 평소 친분 있는 치과의사가 직접 강의를 한다는데 놀라웠다.


며칠 전 모 중앙일간지에 게재된 인문학 강의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인문학 강의는 서울대학교 인문대에서 주최하는 ‘미래 지도자 과정(IFP)’ 강좌이다. 40대 판사, 의사, 대기업 임원, 벤처기업 CEO들을 상대로 하는, 고대에서 현대를 아우르는 역사적 인물 32명의 삶과 사상을 조명해보는 수업이다. 왜 갑자기 이들은 인문학 강의를 듣게 된 것일까? 이 강좌 수료생들은 리포트에서 ‘앞만 보고 쉼 없이 달려온 세월 앞에 나타난 인문학이 지천명의 문턱에서 쉼표를 찍게 하면서 삶의 좌표를 다시 짚어줬다’고 고백하고 있다. 사회지도층에 해당하는 그들의 고백 속에 현재 우리나라의 기형적인 사회의 단면을 직감할 수 있다.


선진국가는 물질적 풍요와 함께 정신적 풍요도 사회 전반에 어우러진 품격 높은 나라를 말한다. 경제적으로만 초고속 성장한 우리나라는 아직 선진국가라고 말할 수 없는 처지다. 정신적 풍요는 인문학이 기초가 돼야하고, 인문학은 사람들이 저마다 소질과 능력으로써 인류사회에 기여할 기회를 부여한다. 인문학 진흥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 정신적으로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선진국 진입의 선결요건이 된다. 또한 지식에 예(禮)가 포장돼야 정의롭고 행복한 사회가 만들어지지, 지식에 예가 덮여지지 않으면 혼란스러운 악덕사회로 변질되는 것이다. 즉 인문학은 예를 기초로 하는 정신학문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예가 상실돼가는, 물질적 풍요에만 몰두하는 기형적 사회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21세기에 접어들어 우리사회 전반에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인문학을 통해 자아의 재인식과 인생 전반에 대한 고찰을 하고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한양대 중국학과 교수이며 한국 인문학 총연합회 사무총장인 위행복 교수의 리포트를 참고하면, 미국이나 유럽 선진 국가들은 과학기술 못지않게 인문학 분야에 국가정책을 수립해 막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그래서 미국은 1965년 대통령 직속의 국립 인문학 재단(NEH)을 설립해 인문학에 대한 정부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을 계속해왔다. 유럽 역시 대학 연구분야 재정의 20% 이상을 인문사회분야에 투입하고 있다. 즉 학문간 불균형을 정부가 나서서 수정하고 인문학 진흥체제로 운영해 품격 높은 선진국가를 지향해온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인문학계는 1998년 ‘인문사회 연구회’가 설립된 때부터 지금의 ‘경제인문사회 연구회’로 통합되기까지 줄곧 인문학 진흥책을 모색해왔지만 아직 국가차원의 지원이 매우 미미한 상태다. 과학기술부문의 2012년 예산은 3조 원에 달하지만 인문사회부문은 2천억 원에 불과하다. 즉 BK(두뇌과학)21 사업은 과학기술을 중심으로 하고 있고, HK(인문한국)사업은 인문학의 학문후속세대 양성에 기여하고 있지만 여러모로 부족한 상황이라 꾸준한 발전이 요구된다고 위 교수는 보고했다.


이런 국가적 환경 속에 치과계의 소집단 월례회에서 치과의사가 강의하는 인문학 강좌는 매우 신선한 충격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앞에서 언급했듯이 사회전반의 경제적 불균형으로 인한 엄청난 부작용이 무섭도록 증가하고 있다. 특히 치과계에도 예의를 망각한 여러 가지 추태가 부끄럽게 노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왜 치과대학 교육과정이 2년간의 교양학부와 4년간의 전문학부로 나눠졌는지 새삼 자각할 시점이다. 즉 사회지도층으로서 치과의사의 소양은 예를 기초로 하는 인문학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2년간의 인문학부 과정을 급변하는 사회환경 속 개업과정에서 잊어가고 있다. ‘쉼표의 인문학’이 치과계에도 사회적 차원에서 솔선수범하는 자세로 매우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생각하는 바이다.


인문학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인문학이란 의미 자체가 인간에 대한 고찰을 뜻하는 것이다. 즉 자아를 재조명해보는 것으로 인문학에 대한 쉼표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인문학을 접하는 것이 특별한 강좌나 프로그램 등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바로 서점에 들러서 젊은 시절 존경하던 위인이나 인물에 대한 자서전 혹은 전기, 그들이 집필한 서적 등을 사서 정신적 휴식을 취하며 정독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왔나’같은 솔직한 성찰을 하는 것이 인문학에 대한 입문이며 쉼표의 인문학을 접하게 되는 것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관리자
Copyright @2013 치의신보 Corp. All rights reserved.

관련기사 PDF보기





주소 서울시 성동구 광나루로 257(송정동) 대한치과의사협회 회관 3층 | 등록번호 : 서울,아52234 | 등록일자 : 2019.03.25 | 발행인 박태근 | 편집인 이석초 | 대표전화 02-2024-9200 FAX 02-468-4653 | 편집국 02-2024-9210 광고관리국 02-2024-9290 Copyright © 치의신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