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시론] 프로페셔널리즘의 위기

2013.05.20 00:00:00

월요시론

 

박영국
경희대 치전원

교무부대학원장

 

프로페셔널리즘의 위기


우리 치과의사들의 프로페셔널리즘(Professionalism)이 위기를 맞고 있다. 치의학전문직업성 정도로 번역되는 프로페셔널리즘의 위기에 대한 원인을 찾아보고, 좀 늦었지만 그 해법을 적극적으로 찾기 위해서는 프로페셔널리즘의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특징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에서의 우리들 스스로의 프로페셔널리즘을 구현해야 할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13세기 경 이탈리아의 피렌체와 베니스에서는 길드 형태의 의사 공동체인 Surgeons’ Collegia가 구성돼 집단적 윤리를 발전시켜 왔다. 이때부터 그들 자신의 집단적 이익과 사회적 책무 사이의 균형을 찾기 위한 공공 사회 활동을 시도함으로써 의사 직무에 대한 배타적 권리 획득과 공익 지향의 직업윤리를 동시에 충족해 왔던 것으로 파악된다. 프로페셔널리즘이란 단어의 어원인 Profiteor는 공개적으로 인정한다는 “Pro”와 엄숙히 서약하고 스스로에게 책무를 지운다는 “fess”에서 유래된 것임을 상기하면, 현재 서구 사회에서의 의료인 직역에 대한 사회적 존경심은 수 세기에 걸친 장기적이고도 적극적 활동의 결과임을 이해할 수 있다.


19세기 말 경 우리나라에 서구문명의 전파와 더불어 서양의학이 도래하였다. 그러나 서양의학이 가진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요소가 생략된 채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직업 권리(면허)제도만 도입됨으로써 직업윤리와 자율규제, 그리고 정치적 윤리를 가지지 못한 행운(?)을 안게 되었다.  “의원 네놈이 먹고 살 수 있는 것은 네놈의 재주가 잘 난 게 아니라 그만큼 사람의 목숨이 질기기 때문이야…” 19세기 초 조선의 외딴섬을 배경으로 한 영화 “혈의누”의 한 대사에서 엿보이듯 이미 우리나라에서는 오래 전부터 의료인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오늘날 의사 직종에 대한 사회의 일반적 정서는 의사들이 너무 냉정하고, 자신 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이며, 뭐가 그리 바쁜지 좀처럼 뭘 물어볼 수 없으며, 환자의 말을 끝까지 듣지 못하고, 환자 사정은 안중에 없으며, 돈만 밝히는 정도로 인식된다.


진료 현장에서 과학의 내용과 방법은 임상적 사고와 질병에 대한 이해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치의학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특히 인간의 생멸과정인 생로병사에 관여할 수밖에 없다. 과학적 관점으로 교육받은 우리의 문제점은 의학의 생물학적, 심리학적, 사회경제학적 측면 중 생물학적 측면에 매몰돼 환자-의사, 가족, 사회와의 관계에서 희로애락의 극명한 변화를 보여줄 수밖에 없는 의학의 종합적 측면을 간과해 왔다는데 있다. 의사와 환자 관계의 총체적 위기의 상당 부분 원인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의학 지식과 의료기술 및 약물의 도입으로 의료수준이 향상한 만큼 의사-환자-사회의 관계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라는 의문을 시작으로 인간의 질병에 대한 통합적인 이해와 접근, 스스로의 능력 부족에 대한 자기 성찰을 통해 의학을 다른 관점에서 파악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점은 다행한 일이다. 급변하는 사회 환경에서 의료업에 대한 명확한 가치 설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프로페셔널리즘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우리나라 의료전문직은 경제적인 성공만을 추구해 왔으며, 사회적 책무성의 부족으로 인해 사회중심가치를 창조하는데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우리 사회 또한 전문직에 대한 미성숙한 인식으로 인해 의사들에게 무조건적인 박애주의나 인도주의적 봉사를 요구해 무료진료를 의사의 최고 덕목으로 강조하다 보니 사회경제적 계약관계를 무시하고 이기적이고 퇴행적인 환자역할이 자리잡았다. 이러한 사회와 의료인 모두의 전근대적 인식이 치과의사의 프로페셔널리즘 형성에 부정적 환경을 제공한 것으로 풀이된다.

인간의 질병은 인간과 분리되어진 병원체로 분석되는 것이 아니며 그곳에는 인간 고통의 의미, 치료의 개념, 가치관, 질병관, 가족책임, 치료비 지불, 사회적 책임 등 모든 시각이 공존되어 있는 종합적 현상으로 보는 시각이 우리들 스스로에게 먼저 필요하고 인간 본질에 대한 이해와 자기 성찰, 타 직종에 대한 이해, 타인과 사회에 대한 긍정적, 능동적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우리들의 노력이 요구된다.


전문직업인으로서의 가치를 개발하기 위해서 치대-전공의-보수교육 등 교육과정의 모든 단계에서 인문사회학적 사고능력을 키워주는 지적 자극을 부여해야 한다. 우리들 치과의사 스스로가 일과 삶의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감으로써 우리만의 진정한 소명과 가치를 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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