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시론] 부자이신 부모님께서 가르쳐주신 것

2013.06.17 00:00:00

월요시론


부자이신 부모님께서 가르쳐주신 것


김성수
희망을주는치과 원장


부자이셨던 어머니, 아버지께서는 생각보다는 부유한 소비를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쓰시던 수십년이 된 그릇을 아내가 물려받았습니다. 외국산 물품을 좋아하셨고 서양의 문물과 종교를 따르셨던 어머니의 우리집에서 붙여준 별명은 “함 헬로우”였습니다. 그래서 어릴적에 많이 입었던 옷은 구제품들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사업을 열심히 하셨고 신용을 지킨 덕분에 상당히 번창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돌아가시전에 다녀오신 해외여행은 괌인가 사이판인가 하는 곳에 한번 다녀오신 것이 전부입니다.

 

그리고 타고 다니셨던 자동차는 9인승 봉고차였습니다. 그 차면 여러 사람들을 싫고 낚시터를 갈 수 있었고 잡아온 생선은 그날 저녁이면 손질을 해서 이웃과 친구분들에게 나누어주시곤 했습니다.


도심에 300평 가량되는 주택에 살면서 그중 100평은 밭이었습니다. 한번을 똥을 싸는 소를 광안리까지 끌고 오셔서 밭이랑을 만들고 삯을 지불하고 그곳에 농사를 지으셨습니다. 무우, 배추, 참외, 수박, 호박, 산초, 고추 , 고구마, 땅콩 그렇게 키우시고 밭일을 하시고 수확때가 되면 대부분 이웃에 나누어주셨습니다. 절반이상…집에서 키우는 개는 10마리 가량되었는데 모두가 잡종들로 좋은 강아지는 이웃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주고 주인손에 잡히지 않는 도망만 다니는 개들만 남아서 계속 번식을 하다보니 점점 우리들과는 멀어졌습니다.


좋고 화려한 물건을 파는 가계에 가시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고 대신 이웃의 시장에 가서는 물건을 많이 사서 여기저기 나누어주시곤 했습니다. 그래서 생활비가 꽤 나갔지만 우리들의 삶은 그리 화려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결혼하던 어느날엔가 부터는 어머니께서 몸빼바지를 구입해서 입으셨고 두꺼운 솜바지를 입고 겨울을 나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아껴쓰시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재산을 놓아두고 궁핍하게 사시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좀 과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는 그런 부모님의 모습이 오히려 자랑스러워집니다. 항상 자신이 소유한 것는 조물주가 우리에게 잠깐 사용을 허락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아무렇게나 써서는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죽고 나서는 다시 셈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작은 형님은 대장암 수술을 받았고 큰 형님은 1500원짜리 침을 놓아주다가 호흡이 가파오는 환자를 응급실로 이송했는데 이후 2시간 만에 환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부검결과 토요일에 호흡을 위해서 삽관한 것이 원인으로 밝혀졌지만 결과적으로 의료과실 치사로 선고받아서 구치소에서 2개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누나는 IMF이전에 직장을 그만둔 자형과 살면서 조금은 어렵게 지냈고 제가 개원하던 해에 유방암수술을 하고 얼마전에 간암을 진단받고 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자녀들은 모두가 고등학교를 중단하고 조금 둘러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 또한 초기에 적응을 못했고 게으른 탓에 오랜 시간이 지나서 겨우 개원했고 해마다 조금씩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제 45세가 되었는데 43세때에는 폐업을 고려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하지만 우리 가족 모두는 아주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정도보다 훨씬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웃들을 수없이 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께서 그 때 입으셨던 몸빼바지와 솜바지 그리고 근검 절약하시고 겸손해지시려고 스스로를 낮추셨고 우리가 어려워졌을 때도 흔들림없이 자신이 젊었을 때 보다 힘든 과정들을 견디었다며 우리가 잘 견디고 하나하나 인생의 숙제를 온전히 마치기를 기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돈을 버는 것에 열심히 노력하셨지만 돈에 딸려가시지 않으셨고 필요한 때는 언제든지 돈을 내려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돈을 귀하게 생각하시고 그들이 과도한 낭비를 하시지 않도록 경계하셨습니다.


“모두가 굶어 죽지 않고 오손도손 살 수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좋은 옷이나 좋은 자동차를 사는 대신 이웃집 아들의 대학 등록금을 대주시기도 하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무허가 집인 이웃에게 전기와 수도를 대주시기도 하고 시장에 가서는 물건값을 깎지 않고 비싼 값에 좀 못한 물건을 사주셨습니다. 생활비는 참 많이 들었지만 생활 수준은 그리 높지 않았던 이유입니다.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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