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시론-장관의 사표

2013.11.06 14:31:32

구 영서울치대 치주과 교수

‘평안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이다’란 옛 말이 있다. ‘평양감사’로 잘못 알려진 평안감사자리는 오늘의 해당지역의 도지사에 해당하는 종2품의 직으로, 조선시대에는 좋은 보직의 대명사로 사용된 듯하다. 대동강변의 넓은 평야지대에 먹을 것 걱정 없고, 선진 중국과 인접하여 진귀한 물건들을 쉽게 접할 수 있고, 남남북녀란 말이 있듯이 출중한 기녀들 또한 많았으며, 무엇보다도 한양과 그리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위치에 있었기에, 선망의 대상인 보직 중 하나여서 이런 말이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중국에 접한 주요 지역의 최고 책임자를 제 싫다고 그만 둘 그런 허튼 인물을 조정이 임명했을 리 없으며, 실지 자의로 그만둔 예도 거의 없었을 것이다. 역설로 ‘주요 정무직은 제 싫다고 그만 둘 수 없다’는 반어적 표현일 수 도 있겠다.
내년도 우리나라 복지예산은 사상 처음으로 100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이 천문학적 예산집행의 주무 부서이자, 치과계를 비롯한 의료단체의 관할부서인 보건복지부의 수장인 장관의 사퇴를 둘러싸고 뒷말이 많다. 임명권자와 의견이 맞지 않는다면, 면담을 신청하고 치열한 논쟁과 조율을 거쳐 해결할 사안에 이메일 사퇴서나, 복귀를 요청하는 총리실 보도자료 배포는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더군다나 임명권자와 10년 이상을 호흡을 맞춰온 가장 가까운 인물로 알려져 있기에 ‘젠틀맨’ 장관의 뒷모습은 더욱 씁쓸하다.      
옛 조선시대의 고위직들은 과연 ‘제 싫으면 그만’이었을까? 사의는 어떤 방법으로 표했을까? 국역 조선왕조실록에서 관련 검색어로 찾아보면, 500년 역사를 감안했을 때 의외로 검색결과가 많지 않다. 제수된 직을 자의로 그만두려는 것 그 자체가 큰 불충으로 받아들인 당시의 분위기를 반영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사직을 청하는 상서(上書)가 기록된 실록에는 한결같이 자신을 한없이 낮추고 임금의 은혜를 하늘과 같이 여긴 내용들이다. 과연 동방예의지국이요 문치주의의 상징이다. 거의가 자신의 능력부족과 노쇠함을 주요한 사직의 이유로 들고 있는데, 여러 차자에서 치아상실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세종 22년, 좌찬성 이맹균은 “엎드려 생각하건대, 신은 의관의 쇠잔한 자손이며 쓸모없는 재주로서 외람되게 성상의 사랑을 입사와…(중략), 이와 머리가 이미 쇠하며 병조차 또 심하오니, 정신이 더욱 혼모하고…(중략), 신이 거짓으로 은총을 사양함이 아닌 것을 양찰하시와, 고향 동리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후략).”라는 전(箋)을 올려 사직을 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선조 33년, 영의정 이산해 또한, “신은 지극히 우졸하여 기록할 만한 장점이나 재능이 조금도 없고…(중략), 견마(犬馬)의 나이가 이미 60을 넘어 눈이 침침한 것이 짙은 안개가 낀 것 같고, 치아가 모두 빠져 고기를 보고도 먹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무능한 신을 빨리 물러가게 하시고…(후략)”라는 차자를 올리니, 선조는 허락하지 아니하였다.
치아가 없거나, 치통을 앓아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고통을 잘 알지 못한다. 제대로 먹을 수 없다면, 개인 사업이든 나라의 일이든 만사가 귀찮아지고, 한시바삐 고통에서 벋어나기만을 바랄뿐이다. 평안감사자리인들 달가울 리 없다.
지난 해 구강질환으로 인해 치과치료를 받은 우리나라 국민이 어림잡아 1700만명에 이르렀다하니, 젠틀맨 장관은 사임의 변으로 차라리 치통을 들었다면 국민의 반은 그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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