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실험

2023.02.15 15:08:31

시론

새로운 의약품이 개발될 때마다 큰 기사거리가 된다. 본과 1학년 때 우연히 알코올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과 알코올 섭취 후 얼굴색의 변화에 따른 건강에 관한 연구를 하는 실험에 임상실험 대상자로 참석하였다. 빈속에 거의 소주 한 글라스(반 병) 정도를 마시고 한 시간 경과된 후 피부색의 변화를 관찰하는 실험이었다. 공짜 술 마시고 한숨 자고 나니 실험이 끝났는데 고생했다며 실험대가로 얼마의 사례비를 받았다. 그 당시 학생신분으로서는 꽤 큰돈이었는데 그 돈으로 다시 친구들과 술 한 잔 했던 기억이 난다. 필자는 그 당시 별 생각없이 잠시 짬을 내 실험에 참여했을 뿐인데 얼마 지나고 나니 그 실험의 결과와 관련된 논문이 텔레비전과 언론지상에 발표되었다. 대단한 일에 참여한 듯해서 스스로 우쭐해졌었던 기억이 있다.

 

어릴 적 만화가게에서 빌려본 책 중에 살 빼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내용은 어느 뚱뚱한 사람이 의원에게 찾아가 살을 빼고 싶은데 비용이 얼마가 들어도 좋다며 방법을 물었다. 의원은 약을 지어주며 열흘 후면 분명 효과가 있을 거라며 그때 다시 와 보라고 말하며 처방해 주었다. 정말 열흘 후에 홀쭉해져서 못 알아볼 정도로 날씬해져서 웃으면서 나타났는데 이유인즉, 처방해 준 약을 먹고 잠만 자면 꿈에서 길바닥에 떨어진 돈을 줍고, 또 가다가 보면 금덩이가 나와 밤새도록 돈과 금을 줍다가 날이 샜다고 했다. 꿈속이지만 열흘 동안 주우면서 걷다 보니 살이 빠져 날씬해졌다면서 여하튼 효과를 봤으니 감사하다며 인사하고 돌아갔다.

 

며칠 지나 소문을 들은 이웃에 사는 사람이 자기도 살을 빼고 싶으니 처방해 달라고 하면서 비용이 너무 부담되니 가격을 좀 싸게 해 달라고 했다. 집요하게 생때를 쓰듯 요구하니 의원은 마지못해 그렇게 해주겠다며 열흘치의 약을 처방해 주었다. 약을 받아간 그는 살이 빠진 자기 모습을 상상하며 살 빼기 작전에 돌입했다. 열흘 후 정말 몰라보게 살이 빠졌고 날씬해진 모습이기는 한데 왠지 다 죽어가는 몰골이었다. 내용인즉, 약을 먹으면 잠이 오는데 낭떠러지에서 떨어지거나 호랑이에게 쫓기는 꿈, 관가에 가서 곤장 맞는 등 귀신에게 놀라 달아나는 꿈만 자꾸 꾸게 되어 살은 빠졌지만 악몽에 시달려 죽을 뻔 했다고 따지듯이 말했지만 의원은 살이 빠졌으니 된 거 아니냐고 주장하며 비싼 약은 길몽을 꾸고 싼 약은 악몽을 꿀 수 있다는 걸 얘기하기도 전에 급히 가버렸다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난다.

 

이런 추억들 때문인지 임상실험에 관한 기사를 접할 때면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된다. 당뇨병 치료제가 이뇨작용을 일으켜 다이어트 치료제로 개발되었다든지 심장병 치료제의 부작용으로 발기부전 치료제로 개발되는 등, 의약품을 개발하기 위해 많은 실험을 거쳐 최종 인간에게 미치는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임상실험에 참여하고 있는 것 같다. 약효가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실험대상이 되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도 있고 대가를 받고 행하는 경우가 있는데 전자는 뚜렷한 치료제가 없는 절박한 환자일 경우도 있고 후자는 금전적인 대가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참여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런 실험을 통해 개발된 의약품들이 인류를 구원하는 중대한 역할을 했기에 임상실험 참여자의 역할도 높이 평가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기회가 생긴다면 인류에 기여하는 의약품 개발사업에 참여하리란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본과 1학년 때 참가했던 알코올이 얼굴색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도 이미 오래전에 발표된 사실이고 시간이 지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지 모를 일이나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알코올을 섭취하고 시간이 경과될수록 얼굴색이 붉게 변하는 실험군과 변하지 않는 실험군을 비교해본 결과, 변하지 않는 사람이 알코올을 해독하는 능력이 훨씬 더 유리하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그 실험을 토대로 개인의 신체조건에 따라 똑같은 술을 마셔도 반응이 서로 다르고 간의 해독 능력과 회복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음주 후 회복시간이 차이가 난다는 것을 그때 이후부터 알고 있었다. 필자는 얼굴색이 변하지 않는 경우에 속해 괜히 기분이 더 좋았고 주량이 더 센 것 같았다.

 

지금 우리나라는 최고의 의약품과 최고의 의료기술로 의료혜택을 누리고 있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전 국민 의료보험으로 의료 천국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치과 임플란트가 보험 되는 우리나라, 이가 없으면 틀니는 고사하고 잇몸으로 살던 시대를 겪은 필자 세대의 입장에선 변화되는 하루하루가 새롭고 감사할 따름이다. 그렇지만 의료혜택의 사각지대에 있는 분을 구제하고 오늘도 의약 개발에 기여하는 숨은 참가자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희귀병, 난치병 치료제가 더 많이 개발, 생산되어 의료비 부담이 더욱 줄고 더욱 건강한 우리사회가 되길 간절히 빌어본다.

 

 

 

임상실험

 

질병정복을 향한

보이지 않는 희생

선구자적 용기

절실함과 희망으로

두려움을 이겨냈다

 

난치환자 위해

숨은 기여자 되어

위험 마다한 임상실험

값진 결실 이루어

인류공헌 밑거름되리

 

비보험이 보험으로

의료부담 줄어드는

끊임없는 의약개발

아픔이 사라지는

건강한 우리 사회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광렬 이광렬치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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