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날을 셈하는 지혜
2002년의 해가 서녘으로 지고 있다. 또 한 해가 지나간다. 나는 보낼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데, 무정하게 뿌리치고 간다. 나는 약속하지 않았는데, 철칙처럼 돌아보지 않는다. 채워야 할 것들이 아직도 많은데, 그냥 빈 수레로 내달린다. 아직도 마음은 아쉬움을 달래는데, 아내는 어디서 얻어왔는지 낯선 놈을 벽에 걸어놓는다. 아, 또 새해란 말인가!
갑자기 덧없는 인생을 일깨워주는 성경말씀들이 떠오른다. 모세는 인생을 잠깐 자는 것 같다고 했다. 또 아침에 돋는 풀이라 했다. 다윗은 그림자와 같다고 하였고, 욥은 베틀 사이를 지나는 북과 같다고 하였고, 사라지는 구름 같다고 했다. 야고보는 인생을 안개와 같다고 했고, 베드로는 시들어 가는 풀과 같다 하였다. 정말 그렇게 지나가나 보다.
어렸을 때, 나는 집 앞 바닷가에서 친구들과 모래성을 쌓으며 놀곤 했다. 정신 없이 그렇게 모래성을 쌓다가 보면 해는 금방 서녘으로 지고, 어머니가 늦었다며 나를 부르셨다. 파도에 쓸려 가는 모래성을 바라보면서 나는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이것이 인생이 아닐까! 파도에 쓸려갈 모래성을 쌓다가 누군가 손짓하면 돌아가야 하는.
그렇게 소중한 시간이기에, 좋은 것으로 채워야 할텐데,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스위스의 한 노인이 우리를 대신해서 자신의 80평생을 헤아려 주었다. 헤아려보니 80평생 중 26년은 잠을 잤다. 그리고 21년 동안 노동하였다. 또 6년을 식사하는 데 사용했다. 남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기다린 시간이 무려 5년, 또 5년을 불안스럽게 혼자 낭비해 버렸다.
수염을 깎고 세면하는 데 228일을 보냈고, 아이들과 노는데 26일을 썼다. 넥타이를 매는 데 18일이 걸렸고, 담뱃불을 붙이는 데 12일이나 썼다. 마음속에 행복을 누렸던 가장 기쁜 시간들을 찾아보았더니 단지 46시간에 불과하더란다. 80년을 살았지만, 46시간 밖에는 건지지 못한 셈이다.
오래 산다고 많이 건지는 것도 아니다. 인류 중 가장 오래 산 사람은 므두셀라라는 사람이다. 성경에 보면 그는 969년이나 살았다. 아주 먼 옛날에는 이렇게까지 살았나보다. 그렇지만, 성경에는 그가 그만큼 살았다는 것만 기록되어 있을 뿐, 그에 관한 아무런 기록도 없다. 긴 인생을 살았지만, 한 마디의 가치도 남기지 않은 것이다.
시간과 함께 지나는 인생, 지혜는 어떻게 얻어지는 걸까. 성경 시편에 모세라는 사람의 기도가 특이한 뉘앙스를 남긴다. 그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다. 나에게 날 수를 계수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오 자신의 남을 날을 셈하는 것, 이것을 그는 인생은 큰 지혜로 알고 남은 날을 셈하며 살았던 모양이다. 왜 그랬을까. 시간을 질적으로 충실하게 살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문명의 발전을 시간에 대한 인식의 발전으로 파악한 사람이 있다. 문명 비평가 오스왈드 슈펭글러인데, 그는 서양의 몰락이란 책에서 이런 지적을 했다. 원시인들에게 있어서 시간이란 말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물론 그들도 시간 속에서 살았지만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단지 그들이 의식한 것은 공간이었다. 공간은 우리의 감각 세계와 같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는 미개인은 공간에 관심이 많고, 문명인은 시간에 관심이 많다고 하였다.
이러한 지적은 상당히 의미가 있어 보인다. 오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간에 관심이 많다. 그들의 인생은 어떤 공간을 소유하고 그 공간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로 채워진다.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어떻게 채울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그들이 공간을 빼앗아 가는 것을 간과한다.
새 달력을 보며 기도해 본다. 나도 모세처럼 나의 남을 셈할 줄 아는 지혜를 주소서하고.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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