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삶/허영엽 신부·천주교 서울대교구 홍보실장]남북 통일은 하느님의 뜻

2005.03.31 00:00:00

얼마전 피정 미사중 신자들의 기도에서 통일에 대한 기도를 바치고, 함께 손을 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노래했다. 노래를 부르던 중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졌다. 갑자기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나의 외할아버지는 6.25 전쟁때 북한에서 피난 내려와 부모와 동생들과 헤어져 생사도 모른 채 살아 오셨다. 아주 오래전 텔레비전에서 이산가족찾기 운동이 한창일 때였다. 여름방학때 외할아버지댁에 놀러갔었다. 외할아버지는 며칠날 며칠밤을 이산가족을 찾는 프로그램에 눈을 떼지않으시고 보셨다. 어느날 한밤중에 잠에서 잠깐 깨어났는데 외할아버지는 이불을 뒤집어 쓰신 채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다. 나는 잠결에 외할아버지가 왜 더운 여름에 이불을 쓰고 계실까 생각했다. 그런데 잠시후 외할아버지의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부모와 형제들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 울고 계셨던 것이다. 나는 그날 밤에는 잘 느끼지 못했던 외할아버지의 마음을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느끼게 되었다.


북녘에 부모 형제를 두고 온 사람들의 마음은 모두 같을 것이다. 많은 슬픔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산가족들의 마음을 자주 기억하고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열심히 기도해야 하겠다.
오늘 우리는 국토분단과 민족의 분열과 상처속에서 통일을 성취해야 할 사명을 지니고 살고 있다.  하느님은 인간의 평화와 행복을 원하신다. 메시아를 기다리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고 복음을 선포하셨다. 하느님 나라의 오심은 평화와 자유, 그리고 정의와 생명에 대한 인간의 열망과 추구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는 지금의 우리가 살고있는 현실에서 이미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의 현실과 관계없는 것이라면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최종적 희망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하고 있다. 만약에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의 신앙은 모두 무의미한것이 되고만다. 부활체험은 비겁했던 사도들에게 새롭게 힘과 용기를 주고 다시 태어나는 계기를 마련했다. 따라서 부활은 새 하늘, 새 땅의 탄생이며 인간으로 하여금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누리게 하는 하느님의 능력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분단을 통해 고통받은 우리민족에게도 희망을 비추어 준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간을 절망에서 희망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변화시켜 진리가 결국 승리한다는 확신과 보증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민족의 통일을 부활의 믿음속에서 희망을 지녀야한다.


우리가 통일을 위해 첫 걸음은 마음을 모아 열심히 기도하는 것이다. “너희 중에 두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마음을 모아 구하면 내 아버지께서는 무슨일이든 다 들어주실 것이다”(마태 18,19) 기도한다는 것은 갈망하고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 교회는 무엇보다 통일을 갈망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안에 이루시는 하느님의 뜻과도 일치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도 민족과 사회, 현실을 망각한다면 그 신앙은 공허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민족의 통일은 한국교회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교회는 이제 더 적극적으로 화해와 일치의 방법과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어렵고 힘든 십자가의 길이라 하더라도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이다.
하루빨리 천만명이 넘는 이산가족이 서로 만나고 북한에도 하느님의 복음이 널리퍼질 수 있도록 정성껏 통일을 위해 기도해야 하겠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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