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시론]영어 때문에 불행한 우리들/장주혜

2008.09.01 00:00:00

장주혜<본지 집필위원>


영어 교육에 대한 열기는 지난 여름의 폭염보다도 더 뜨겁다. 어느 장소에 가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더라도 족히 한 시간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화제가 될 정도이다.
최근에 와서 이런 저런 이유로 해외 체류의 기회가 많아지면서 젊은 나이로 갈수록 영어가 능숙한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등 뒤에서 완벽한 영어가 들려와 슬쩍 돌아다 보면, 어딜 봐도 이방인의 얼굴을 찾을 수가 없을 때가 종종 있다. 원어민의 영어발음을 가진 검은 머리 소유자가 우리말까지 막힘 없이 하는 것을 보면 부럽기 그지 없다.


성문 종합 영어의 문법이 절대 절명의 원칙인 줄 알았었고, 팝송이나 AFKN 근처에서 맴돌기에는 마땅치 않은 모범생이었고, 비행기는 신혼여행 갈 때 처음 타 봤던 기성 세대들에게 유창한 영어 구사란 너무도 멀고 먼 길이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만은 이 설움을 면제시켜 주어야 한다는 결심이 사무친다. 여기에다 각자 속사정은 어떨지 몰라도, 모두가 부러워하는 상위권 소득의 전문직 종사자가 아니란 말인가. 아이들을 해외로 보내는 데에 대해 다른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갈등이 적다고 볼 수도 있다. 조기 유학까지는 몰라도 한, 두 해 외국에서 공부시키면 평생 밑천이 될 영어를 얻어 올 수 있을 것 같으니 생각해 봄 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느 시점에 아이들을 보내야 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느냐는 것도 과거에는 초등학교 저학년 후반이 정설이 됐지만, 요즘은 또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어느 때이던 아이들은 새로운 문화의 충격을 받고 얼얼해 하고, 또 부재했던 기간 동안 우리나라에서 잃고 만 것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만 한다. 이 또한 이미 널리 공감하는 사실이다.


아무리 아이들이라도 서로 다른 언어권에 적응해 가는 과정은 개인마다 다른 속도로 치르게 된다. 한 가지를 내려 놓아야 다른 하나를 취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아주 이상적으로 두 가지를 균형 있게 보유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꿈꾸는 것은 당연 후자로서, 상황에 맞추어 두 가지 이상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포함되는 것은 빠른 속도로 책을 읽어 내고 또 수준 있는 작문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아이들이 언어가 다른 곳에 정착한지 2,3년 정도가 지나면 현지어가 편안해 지면서 원래 모국어의 끈을 놓아 버리게 마련이다. 그러면서 한국말을 하는 부모에게 영어로 응수를 하는 관계가 형성된다. 지나면 지날수록 한국말로 입을 떼기가 점점 어려워지지만, 그렇다고 원어민 부모들과 자라는 아이들과 같은 형태로 언어가 성숙하는 것만도 아니다. 그저 상대적으로 영어가 더 편하다는 것이다. 속도 모르는 사람들은 발음이 거의 유사하다고 원어민으로 알지만, 그들이 느끼는 부자유는 엄연히 존재한다.


물론 시간이 더 흐르면 달라질 것이다. 분명한 것은 언어 능력이라는 건 아주 미묘하고 다양한 색상의 스펙트럼과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개개인의 용량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교포 부모들의 경우 자기 아이들이 모국어를 잃고 사는 것이 안타까워서 현지 한글 학교에 보내는 경우가 많다. 거기서 어느 정도의 한글을 습득하지만, 회화를 넘어서 수준 있는 우리말로 작문까지 한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에 속한다.


물론 언어적인 재능이 탁월한 소수의 인재에게는 예외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외국에 가서 공부하고 지금도 한국에서 보내는 시간은 며칠 되지 않는 첼리스트 장한나는 모 일간지에 훌륭한 칼럼을 써 내고 있다. 군더더기가 없이 아주 정연한 글 솜씨가 경이롭다.


많은 사람들, 전공을 이과로 선택했던 우리들, 그리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쉽지만 평범한 언어 능력 보유자 군에 속한다고 봐야 한다. 그러기에 아무리 영어의 바다에 풍덩 빠질 수 있는 조건이라도 두 가지 언어를 100/100으로 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모국어와 외국어를 100/20 또는 70/60 등으로 선택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고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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