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선 칼럼]法의 효과

2009.03.19 00:00:00

요즈음 언론 매체를 보면 장기 등 신체기증이 활발하게 이루어짐을 볼 수 있다. 늘 있어왔던 일이기는 하지만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후에 부쩍 많아진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이미 생존시에 안구기증에 서명하시어 마지막 남은 육신까지도 희사하신 분이시다.
뿐만 아니라 장묘문화에까지 영향이 미쳐서 매장문화에서 화장문화로 한발 다가가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인간이 文化生活을 영위함에 있어 기본적으로 지켜야 될 일들이 法 이전에 禮로서 통용되던 시절이 있었다. 禮란 法으로 강제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양심으로 지켜야 될 기본적인 윤리의식을 일컬음이다. 대표적인 실례를 들어보면 人倫의 으뜸이 되는 婚禮(혼례) 喪禮(상례) 祭禮(제례) 등이다.
장묘제도(葬墓制度)는 喪禮(상례)에서 파생된 것으로 장사지내고 묘지를 설치하는 방법을 법률로 제약하기에 이른 것이다.


기왕에 있었던 매장 및 묘지 등에 관한 법률(약칭: 장묘법)은 동양문화권의 유교적 윤리관이나 부활을 상징하는 기독교적 의식이 내재된 매장문화로 기본 틀이 잡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전국의 가용한 국토(악산이나 수해지역, 평야 등을 제외한 야산이나 구릉지역)가 매년 1%이상이 분묘로 잠식되는 위기에 몰리게 된다.


이러한 현실에 통감한 본인(황규선)이 매장문화에서 화장문화로 革變(혁변)하는 장묘법 개정안을 발의하게 된다.
명분을 쌓기 위하여 수도권의 유수한 집단공원묘원을 답사하고 특히 1998년 여름 대홍수로 고양군 용미리의 공동묘역에서 분묘 8,000여기가 휩쓸려 떠내려가고 유골이 하천 여기저기에 널려 있는 참상을 현장 답사하기에 이른다.


국립묘지의 유공자 묘역, 장군묘역, 무명용사 묘역을 참배하면서 사후에도 너무나 큰 차별대우를 받는 것에 회환을 느끼게 한다. 더욱이나 당시 대통령의 묘역(용인)을 답사하면서는 풍수지리에 매료되는 듯한 샤머니즘에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장묘문화의 근간을 바꾸려하니 몇 군데 조항만을 개정하는 것이 불가능하여 법의 명칭 자체도 바꾸기로 하고 “장사 등에 관한 법률”로 새로운 법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수차례에 걸친 공청회와 소위원회에서 법률안이 확정되는 단계에 이르니 사회각처에서 반론이 제기되고 압력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우선 청와대에서 압력이 들어오고 유림과 기독교 계통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압력성 회유에 시달리게 된다.


매장하는 경우는 국민 누구나가 6坪이내의 분묘를 써야 되고 15년간 한시적으로만 보존할 수 있다는 조목이 걸림돌이었다.
사방에서 몰아닥치는 회유와 압력 때문에 결국에는 15년 한시적 묘지사용은 3차례에 걸쳐 연장할 수 있도록 하고 경과규정을 두어 이 법이 시행되기 이전의 분묘는 예외규정을 두도록 양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저한 국가유공자나 특별한 인사에 대해서는 관련된 부처의 장으로 구성되는 위원회에서 별도로 예우할 수 있도록 예외 규정을 삽입하였다.


본회의장에서 본인은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을 제안 설명하면서 비장한 각오로 심경을 토로했다. “저는 저의 사후의 시신 전체를 저의 모교인 치과대학에 기증하겠습니다.”
제안 설명이 끝나고 절대적인 다수의 찬성으로 장묘법은 확정되었다.
이 법이 제정되고 10년이 지나는 이 시점에 화장을 선호하는 국민의 여론이 50%를 상회함에 자긍심을 갖는다.
내용이 정당하고 명분이 있으면 언젠가는 빛을 보게 되는 것이기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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