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시론] 김 신/ 아날로그적 발상

2009.05.18 00:00:00

김   신  <본지 집필위원>

 

아날로그적 발상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디지털은 너무나 익숙한 물건이다. 아무데나 널려 있다. 처자를 떠나보낸 기러기 치과의사의 눈물을 쥐어짜게 만드는 인터넷 화상통화, 어디건 데려다주는 네비게이터, 바지주머니 속에서 세상을 연결해 주는 휴대폰… 그리고 치과 진료에 이제 디지털 X-ray는 필수장비가 되어가고 있다. 숨쉬는 공기 중에도 디지털은 섞여 있을 것 같다.
디지털이 현대생활에 필수적인 도구가 되어가면서부터 아날로그는 디지털의 반대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 디지털은 최첨단 신기술을 등에 업은 편리함의 대명사로 이해되는 반면, 아날로그는 과거의 느리고 불편했던 낙후한 기술이자 골동품으로 파악되는 경향이 강해졌다. 그러나 실제로 그럴까 하는 의문을 간혹 가지게 된다.


지도를 들고 초행길을 운전하다가 길을 잃어 차창을 내리고 촌노에게 길을 물었을 때 물씬 풍겼던 고향 냄새는 이제 네비게이터가 빼앗아 갔다. 이메일이 아닌 육필로 쓴 편지를 받아본 지가 얼마나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람의 체취와 마음이 묻어나는 글씨와 편지지, 봉투가 그리울 때가 있다. 디지털 카메라가 시장의 판도를 완전히 바꾼 요즈음에도 구형 아날로그 카메라를 끼고 다니며 방 한 구석에 커튼을 치고 암실을 만들어 현상한 필름과 사진을 빨래 널듯 걸어놓고 자신의 작품을 기쁘게 바라보는 아마추어 사진가를 타인들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광 한 구석에 처박혀 거의 버려진 박스 속에서 찾아낸 옛날에 힘들여 사 모았던 LP판을 꺼내들면서 이 물건이 지금껏 사라지지 않고 내 주변에 살아남은 사실 하나 만으로도 환희에 찰 때가 있다.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소리를 들어보면 마치 여름 소나기 오기 시작할 때 땅에서 피어나는 흙냄새, 바람이 훑고 지나가는 뒷산의 솔잎들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지직거림이 더 정답다. 이건 아련한 그리움이다. 이것이 바로 아날로그다.


본래 디지털은 소리와 영상 자료를 전산적으로 쉽게 처리할 수 있도록 불연속 부호로 변환하여 표현하는 방법이다. 소리와 영상 신호는 자연 상태에서 연속체 형태로 존재하므로 아날로그적 표현이 디지털 표현보다 더 자연에 가까우며, 그래서 디지털 음향에 빠졌던 사람들이 자연스러운 아날로그의 구시대적 소리와 물건에 향수와 따스함을 느끼는 것으로 해석들을 한다. 실제로 요즈음 감각이 예민한 사람들 중에는 디지털 사운드를 배격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아날로그는 이제 구식의 불편함 뿐 아니라 인간의 감성을 받아주는 안온함과 풍요로움을 의미하는 말로도 사용된다.
눈을 돌려 우리 주변을 보자. 특히 최근의 치과의원 내부 모습들은 눈이 휘둥그레 해 질 정도로 호화롭고 장엄하기까지 하다. 그림에서나 보던 맨하탄 한 가운데의 유명한 레스토랑이나 육성급 호텔 라운지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대리석과 유리, 스테인레스 스틸 소재의 마감재들이 너무 많아 익숙하지 않은 환자들은 주눅이 들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반사광을 많이 내뿜는 소재들은 사람의 마음을 푸근하게 만들지 못 할 것 같다. 이건 디지털적인 소재들이다. 거꾸로, 돌, 목재, 천연섬유 등 자연 소재를 사용한다면 이런 느낌은 상당히 완화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치과에 내원하는 환자들의 상당수는 불안, 공포심을 가지는데, 그 근저에는 통증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고, 또 한편에는 비싼 진료비에 대한 걱정이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호화로운 디지털적 분위기 보다는 마음을 푸근하게 달래고 안정감을 주기 위한 배려가 더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의술이 최첨단의 디지털화 장비에 더욱 의존해 갈수록 치과의원의 분위기는 거꾸로 사람의 마음을 따스하게 만져주는 아날로그적인 해석과 배려가 더 많이 요구될 것 같다. 매끈하고 세련된 맛 보다는 투박한 따스함을 주는 아날로그적 역발상이 필요한 때이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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