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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변신 임창준 원장 “치의는 임상사진만 찍으란 법 있나요?”

치의 변신은 ‘무죄’ 임창준 원장, 6월 10일까지 전시회
선입견에 좌절 “사진에 목숨 걸자” 절치부심…개인·단체전 10여 회


5월의 어느 날,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건물 1층 로비와 2층 복도에 마련된 사진전시회로 발걸음을 향했다. 이어 이번 전시회의 주인공인 작가 한 명을 만나볼 수 있었다. 치과의사에서 사진작가로 제2의 삶을 개척해 나가고 있는 임창준 원장(이엔이치과의원)이다.


임 원장은 대한구강악안면임플란트학회, 대한심미치과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임상 분야에 탁월한 성과를 이뤄왔다. 수십 년간 치과의사로 살아오며 숱하게 임상 사진만을 찍어온 그가 사진작가로 새길을 선택한 시도는 신선한 변화였다.


임 원장이 사진에 첫발을 들여놓은 건 본과 3학년 때였다. 당시 서울치대 사진 동호회 ‘포토미아’ 회장인 친구의 제안이 있었고, 이를 계기로 소위 ‘똑딱이’라고 불리는 휴대용 카메라를 들고 방방곡곡 사진을 찍으러 다녔다. 그러나 인턴과 레지던트를 거치고, 가정을 꾸리며 삶은 그에게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가 사진과 재회하게 된 때는 환갑에 이르렀을 때였다.


임 원장은 “내가 어느 한 곳에 빠지면 몰입하는 성격이라 아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자식을 다 키우고 나니 그제야 아내가 사진을 허락했다”라며 웃음 지었다.


몇십 년 만에 다시 만난 사진계는 그가 학생 시절 느끼던 분위기와는 판도가 바뀌어 있었다. 그는 새 트렌드를 좇기 위해 중앙대 사진아카데미에 들어가 차근차근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총 3년 과정이었다. 40~50명씩 다섯 반이었던 인원이 학기를 거치면서 절반씩 줄어들었다. 나도 일상에 치여 회의가 들 때도 있었지만, 이왕 할 거 제대로 하자는 심사로 밀어붙였다”


좌절의 순간도 있었다. 임 원장이 두 달간 밤잠을 설치며 준비했던 포트폴리오 경연에서였다. 심사위원은 그의 포트폴리오를 건성건성 넘기더니 대뜸 “치과의사시죠?”하고 물으며 “원장님은 치과에 관한 것만 찍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 원장은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애초에 내가 치과의사라는 선입견으로 ‘먹고살 만하니 한가롭게 취미 생활하는 것’이라고 보는 듯했다”고 회상했다.


이를 계기로 절치부심한 임 원장은 소위 ‘목숨을 걸 정도’로 사진에 매진하기로 마음먹었다. 진료 일정을 제외하고 틈만 나면 출사를 나가고, 사진 갤러리를 찾아다녔다. 그 과정에서 만난 유명 작가들은 그에게 많은 영감을 줬고,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현재 임 원장은 어엿한 사진작가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단체전은 벌써 10여 회에 이르고, 개인전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그는 치과의사 출신 작가로서 다른 작가가 보지 못하는 미적 요소를 포착하는 눈을 가졌다. 바위에 고인 물에 비친 빛이 변화하는 모습을 통해, 발생학적으로 태아가 자라는 과정을 표현한 작품 ‘Fetal development’, 꽃의 꿀을 따먹는 직박구리의 모습에서 ‘식세포 작용’을 표현한 ‘Phagocytosis’가 그 예다.


직박구리, 해오라기 등 새의 모습을 담은 작품도 눈길을 끈다. 여기에는 고개를 수그리고 일하는 치과의사 특성상, 그를 오랫동안 괴롭혔던 목 디스크를 비롯해 직업상의 압박감과 스트레스, 무력감, 외로움 등을 치유하는 과정이 서려 있다.


“15도밖에 고개를 못 들던 내가 새를 촬영하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다행히 사진을 촬영하고, 스트레칭을 하며 몸이 조금씩 회복됐고, 어느 순간 고개를 완전히 젖힐 수 있게 됐다. 매화와 벚꽃, 새들을 사진에 담으면서, 내면의 정원을 돌아보고 스스로를 치유하게 됐다.”

 


현재 임 원장의 하루는 26시간이다. 사진 작업을 하다 보면 새벽 2시를 넘기는 경우도 예삿일이다. 치과의사와 작가의 삶을 모두 소화하며 어느 쪽에도 소홀할 수 없기에 밀도 있는 일상을 지내고 있다. 그는 가까운 일 년 내에 2회 정도 사진전을 또다시 열 계획이다.


“치과의사라는 직업이 참 좋다. 그래도 때론 하늘을 올려다보는 여유를 가지길,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선 후에는 또 다른 분야를 개척해 보길 권해드린다”


임 원장의 전시회는 오는 6월 10일까지 서울대 치의학대학원에서 누구나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