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매주 화요일 저녁 8시면, 합창 연습을 하러 순천 연향동에 있는 연습실로 갑니다. 분주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연습실 의자에 앉으면, 졸음이 연신 나오고, 목소리 트레이닝으로 아아아~아아를 시작하고, 지난주에 배웠던 노래를 다시 반복하여 부르고, 파트별 연습을 돌아가면서 합니다. 이렇게 노래를 부르다 보면 노래에 푹 빠지게 되고, 살짝 몸의 열이 나면서 만족감에 빠집니다. 제가 소속되어 있는 합창단은 일반 순천 시민들이 단원들로, 주부부터 회사생활을 하는 분들, 퇴직한 교사, 자영업을 하는 분들까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합창이라는 하나의 매개체로 함께 합니다. 먼저 합창은 무엇일까요? 제가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여러 사람이 여러 성부로 나뉘어 서로 화성을 이루면서 다른 선율로 노래를 부름, 또는 그 노래” 이렇게 나옵니다. 저희 합창단은 현재 4개의 파트 즉 여성은 알토, 소프라노 남성은 테너, 베이스 이렇게 구성되어 있어요. 여성은 25명 정도, 남성은 12명 정도가 활동합니다. 참고로 저는 소프라노 파트로, 오선지를 넘어가는 노래는 호흡이 매우 딸리며, 반복 연습을 통해, 다른 파트원들과 힘을 내어 극복을 합니다. 아무리 어려운 노래도 무대에
버스 차창의 와이퍼가 새똥을 죽 밀어냈다. 서울에서 고향으로 내려가는 고속버스 안은 마땅히 할 게 없다. 그렇기에 나는 흥미롭게 창문을 지켜봤다. 버스 기사는 못마땅한지 쯧, 혀 차는 소리를 내고 워셔액으로 똥을 닦아냈다. 금세 창문은 멀끔해졌다. 집에는 얼마 만에 내려가는 것인지 새삼 떠올려보았다. 다섯, 여섯 달만이었다. 본가를 떠나 상경한 학생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홀로 떨어져 지내다 보면 집이 너무나도 그리워진다. 기공 실습이라도 있는 날엔 왁스 증기나 석고 가루 따위가 목 안을 빽빽하게 채우는데, 그럴 때마다 집에서 얼큰하게 끓여낸 김치찌개가 간절해졌다. 갓 지은 보리밥을 숟가락으로 욱여넣고 국물이 밥알에 쫙 배어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김치와 고기를 올려 입안 가득 차게 넣으면 케케묵은 먼지들은 단숨에 내려갈 듯싶었다. 고향이 조금씩 낯설어질 때마다 떠밀리는 느낌을 받곤 했다. 언제 한 번은 새벽에 엄마에게, 옛날에 춘천으로 놀러 가서 네 식구가 하나씩 만든 도자기 중 내가 만든 컵이 깨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비몽사몽간에 무슨 컵이지 스스로 되물었다가 문득 길쭉했던 도자기 컵 하나가 생각났다. 오늘은 나가더라도 차조심, 사람조심, 물조심, 불조심하거라
치매는 결코 안심할 수 없다. 치매 없는 나라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치매 발병을 늦추고 돌봄 부담을 줄이는 것은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이 치매안전국가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다. 우리는 예방과 돌봄의 치매 안전벨트를 채워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필자는 그 목표를 위해 ‘치매 발병을 3년 늦추고, 가족의 돌봄 부담을 30% 줄인다’는 구체적 전략을 제시하고자 한다. 일본이 국가정책으로 치매 발병을 1년 늦추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면, 대한민국은 더 도전적인 목표를 세워야 한다. 발병을 3년 늦추면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사회 전체의 돌봄 비용은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30% 부담 경감은 가족과 사회 모두에게 현실적 희망을 주는 약속이다. 이때 핵심 중의 핵심은 구강관리다. 치주질환 원인균이 치매 발병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는 이미 다수 축적되어 있으며, 자연치아를 20개 이상 지킨 노인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치매 발생률이 크게 낮다는 결과도 보고되고 있다. 씹는 힘을 지키고, 뇌를 자극하며, 치매를 늦추는 힘이 바로 치아에서 나온다. 다시 말해 ‘치아 보존 → 씹는 힘 유지 → 뇌 자극 → 치매 예방’이라는 연결고리가
올해도 어김없이 아파트 주차장 초입에 배롱나무 꽃이 활짝 피었다. 무더운 여름내내 피어서 출퇴근 시에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는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처럼 열흘 넘게 피는 꽃은 흔하지 않다. 그러나 배롱나무는 백일 넘게 붉은 꽃을 피운다. 그래서 ‘백일홍 나무’라고 불렀다. 소리가 바뀌어서 배롱나무라는 예쁜 이름으로 굳어졌다. 자미화(紫微花)라고도 한다. 백일홍이라면 멕시코 원산 백일홍을 먼저 떠 올리게 된다. 그러나 식물학적으로 전혀 무관하다. 배롱나무는 나무이고 백일홍은 풀이다. 배롱나무는 여름에 꽃이 피고 가을에 열매 맺고 낙엽까지 다 마친 뒤에도 살아서 이듬 해 봄에 다시 새 가지 새 잎을 내는 나무이고, 백일홍은 꽃이 핀 뒤에 시들어서 지면 땅위에 올라 왔던 부분은 가을 지나 사라지는 꽃이다. 자연스레 이름만으로도 이제는 백일홍과 배롱나무를 헷갈리지 않을 수 있다. 백일동안 꽃을 피운다고 했지만 하나의 꽃이 백일 동안 피어 있은 것은 아니다. 수많은 꽃들이 차례대로 피어나는데 그 기간이 백 일이나 계속된다. 배롱나무의 꽃은 한여름에서부터 가을까지 가지 끝에서 고깔 모양의 꽃차례를 이루며 한 뼘이 넘는 크기로 뭉쳐서 피어나는데 꽃송이 하나하나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서는 살 수 없고 사회 속에서 더불어 살아야 한다. 현대와 같은 고도의 분업화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우리의 하루를 돌아보면, 아침에 눈을 떠서 잠이 들 때까지 너무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아니 잠이 든 순간에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있다. 사회 속에서 살아가면서 여러 사람의 도움을 직간접적으로 받고 살지만, 실제로 그 사람들을 다 만나서 교류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만나는 사람만 만나고 살아간다. 특히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가지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만나는 사람의 수와 종류는 더욱더 줄어든다. 40대 치과의사로서 나는 매일 루틴한 생활을 보내면서, 거의 같은 사람들을 만나고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내가 접하고 느끼는 세상은 매우 제한적이다. 이는 누구나 그렇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나의 세상의 제한성은 더 커지고, 그래서 일반적으로 다른 세상에 대한 관용성도 매우 줄어든다. 의정사태를 겪으면서 의료인이 아닌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답답함을 느낀 적이 많다. 내 생각에는 설명하면 충분히 이해하고 동의할 거라고 생각했던 이야기는 전혀 통하지 않았고, 급기야는 다툼으로 끝나는 경우도 많았다. 그들의 세상에서 본 의사들
아침마다 치과 문을 열면 제일 먼저 마주하는 것은 텅 빈 대기실이다. 의자와 유니트 체어는 늘 그 자리에 있지만, 새벽의 정적 속에서 바라보면 낯설고도 묘한 고요함이 감돈다. 그때 나는 잠시 멈춘 듯한 시간을 즐긴다. 책을 펼치거나 음악을 틀어놓거나, 혹은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앉아 있기도 한다. 마음이 무거울 때면 네덜란드 거리에서 노래하던 마르틴 후르켄스의 You raise me up을 찾아 듣는다. 꾸밈없이 성실하게 불러내는 그의 목소리는 지쳐 있는 영혼을 다독여 준다. “When I am down and, oh my soul, so weary…”라는 가사가 흘러나올 때면, 마치 내 지난날과 지금의 삶을 함께 노래하는 듯하다. 책상 위의 화분들은 묵묵히 곁을 지켜준다. 손끝으로 잎을 만지면 물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 내 방의 녹보수는 몇 해째 노란 꽃을 피우고 있다. 환자들은 신기하다며 비결을 묻지만, 사실 나는 그저 바라볼 뿐이다. 햇살과 흙과 물이 제 몫을 다했을 뿐, 나는 다만 곁에 있어 주었을 뿐이다. 환자와의 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정성껏 살피되,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지켜봐 주는 것, 그것이 의사의 몫일 것이다. 요즘 후배들이 종
누구나 자신만의 소망이 있다. 먼 미래에 나를 그리는 원대한 꿈도 있고, 도파민과 스트레스에 따라, 순간순간 이끌리는 바람도 있다. 99년에는 누구보다 스타크래프트를 잘하고 싶었고, (4 드론이 실패하면, 전원을 끄고 도망치기도 했다) 병리학 시험을 보기 직전에는 세상이 멈추기를 바랐던 적도 있었다. (병리학 교실 바닥은 차가웠고, 나의 무릎은 시큰했다.) 그리고 아내가 분만실에 들어갔을 땐, 그저 건강한 우리를 바랐다. 내가 아주 오랫동안 가져온 소망은, 나만의 노래를 만드는 것이었다. 학창 시절 ‘몰라스’라는 밴드를 하며, 수년간 노래를 불렀지만, 내 노래를 갖고 싶다는 바람은 줄곧 내 안에 커지고 있었다. 두 번의 개원을 하고, 두 명의 아이 그리고 한 명의 아내와 15년을 살던 나는 조용히 보컬 레슨을 등록했다. 노래하는 방법과 작곡하는 방법을 배우며 몇 개의 계절이 지나갔고 하나의 노래를 만들었다. 선생님의 권유에, 가수 이름을 만들려 하는데 문제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본명을 쓰기엔 부끄럽고 아내와 아이들의 이름을 조합하니 우스운 단어가 나왔다. 현대과학의 도움을 받기 위해 ChatGPT에 문의하였으나, 그분의 개성 있는 명명에 나는 당황하였다. 이
연일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휴가를 의미 있게 보내고 싶어 새벽부터 아이와 함께 ‘청주고인쇄박물관’으로 향했다. 작년에 감명 깊게 읽었던 소설 『직지』가 떠올라, 이번 휴가 첫 일정으로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김진명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이것이 역사인지 허구인지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작가가 말한 “합리적 허구 위에 상상력을 더한 이야기”라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치밀한 구성과 짜릿한 반전도 인상 깊었지만, 무엇보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와 한글 창제, 그리고 정보와 지식을 독점하려는 기득권의 방해 공작이 현재의 반도체 강국인 한국과 묘하게 겹쳐지는 지점에서 깊은 울림을 받았다. 청주고인쇄박물관은 규모가 작았지만 소설 속 장면들을 현실로 만나는 경험을 선사했다. 직지가 구한말 프랑스 외교관을 통해 프랑스로 건너가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었고, 프랑스 유학 중이던 박병선 박사의 집념 덕분에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으로 인정받았다는 사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양피지 문서, 종이 발명, 목판인쇄, 목활자인쇄, 금속활자인쇄 같은 역사적 성취는 단순한 기술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인류 문명을 발전시킨 거대한 힘이었을 뿐 아니라, 각
대한민국에서 소나무를 빼고 어찌 나무를 논할 수 있겠는가. 소나무는 도시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하고 가장 사랑받는 나무이다. 2014년도 갤럽조사에 의하면 일반인의 가장 좋아하는 나무(46%)가 ‘소나무’라고 답했다. (은행나무 8%, 벚나무 7%) 애국가 2절에도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나오며 TV방송 종영 시의 애국가 영상에 추암촛대바위와 함께 소나무가 등장한다. 소나무는 소나무과의 상록 침엽수로 높이가 30~40m에 이를 정도로 자라며 나무껍질은 적갈색을 띠고 수피(樹皮)는 거북등처럼 갈라진다. 잎은 2가닥으로 갈라져 5가닥으로 갈라지는 잣나무와 구별된다. 햇빛을 무척 좋아하는 극양수(極陽樹)로 햇빛을 찾아 줄기가 구부러져 자라며 숲이 우거져 그늘이 지면 자랄 수 없기 때문에 숲이 무성해지면 이를 피해 산꼭대기에 군락을 형성한다. 다행히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특성상 자갈이 많고 절벽같이 험한 데서도 꿋꿋이 잘 자란다. 이런 점이 여러 외세의 침입에도 잘 버텨낸 우리 민족성과 잘 맞는다고 해야 할까. 꽃은 암수가 같은 나무에서 피며 암꽃은 자주색으로 꽃대 위에 피고 수꽃은 암꽃 아래 노란색 방울들을 이루며 피어나는데 개화
달리기는 나에게 단순한 운동이 아니다. 그것은 명상이고, 내가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어지럽고 복잡한 생각에서 벗어나 오직 나의 호흡과 발걸음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 그 안에서 나는 내게 말한다. “힘들었지? 여기까지 잘 왔어!” 달릴 때면 내 몸과 마음에 자연스레 귀를 기울이게 된다. 발의 움직임, 심장의 고동, 호흡의 리듬이 하나가 되는 그 순간, 나는 나를 위로하고 보듬는다. 바쁜 일상 속에서 무심히 지나쳤던 내 안의 감정과 신호들을 달리기를 통해 비로소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요즘은 골프나 사이클처럼 다양한 야외 스포츠가 유행이다. 물론 각자 고유한 매력이 있지만, 그에 따른 제약도 있다. 골프는 새벽같이 나서야 하고, 하루를 통째로 투자해야 하며, 비용 부담도 적지 않다. 사이클은 자유로워 보이지만, 안전 장비가 필수이고 낙차나 사고의 위험도 고려해야 한다. 반면, 달리기는 특별한 장비나 장소가 필요 없다. 운동화만 있으면 된다.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서든 시작할 수 있다는 단순함이야말로 달리기의 가장 큰 장점이다. 자세만 올바르게 익히고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면 비교적 부상의 위험이 적고, 무엇보다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운동이다.
‘보스턴’ 이라는 도시를 떠올렸을 때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각자 다를 것이다. MIT, 보스턴대학교, 하버드와 같은 명문대의 도시, 랍스터, 굴 등 해산물이 유명한 도시… 하지만 이번 기회에 필자는 보스턴을 전혀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학문, 여행 그리고 설렘이 함께한 특별한 여정이었다. 뜻밖의 기회로 ISPRD(International Symposium on Prosthetics and Restorative Dentistry)에 참석할 수 있었다. ISPRD는 매 3년마다 Quintesence Publishing 에서 주최하는 국제 학회이다. 세계 각국의 치과의사들이 보스턴으로 이맘때쯤 모여드는 것이, 메리어트 호텔 로비에서 보고 있노라면 일본, 이탈리아, 멕시코 등등 전세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모습이 작은 지구촌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학회이다 보니, 의외로 한국 치과의사들은 생각보다 수가 적었다. 등록 줄에 서있을 때, 뒤에서 유럽 치과의사들이 지르코니아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을 엿들으며, ‘내가 정말 먼 곳을 왔구나!‘ 싶음을 느꼈다. 학회의 주제는 임플란트를 중심으로 하지만, 이름에서도 알다시피 보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