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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강 박사의 보험이야기]보험심사

 1965년 여름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공과대학 전자현미경실에 있어야 할 그 시간에 필자는 시카고 시내에 있는 ‘Amalgamated Insurance’라는 보험회사에서 보험심사 일을 하고 있었다. 대학원 2년 과정 중 네 번째인 여름학기에 논문을 위한 학점을 따기 위해 실험실에서 지내야 했다. 그러나 실험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아 매우 답답하던 차에 소위 아르바이트 건이 생겼고, 실험대신 돈벌이를 하게 된 곳이 위의 보험회사였다. 당시 미국에서는 시간당 최저 임금이 1불 25전이었는데, 보험심사 일은 시간당 3불이라 실험은 뒷전으로 미루고 돈 버는데 열중했던 것이다.


마침 근무시간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정할 수가 있어 새벽부터 늦은 시간까지 하루 14시간까지도 일을 하다 보니, 이전에 일했던 식당의 Bus-boy(웨이터 보조)보다 수입이 괜찮았다. 오전 10시가 되면 Coffee-break도 있어 아침을 때울 수도 있었고, 저녁은 중국음식점에 배달 주문을 한 종이상자에 담긴 볶음밥 등으로 해결하기 일쑤였다. 숙소의 월세는 $70, 한 달 식비가 $30, 한 학기(‘쿼터’제로 3개월) 등록금이 $420인 시절이라, 석 달 동안 일해 다음 1년 학비까지도 마련할 수가 있었다. 어쩌면 치과보험심사를 최초로 수행한 한국 치과의사는 필자일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 미국은 전체 인구의 1.5%인 약 3백만 명 정도가 치과보험에 가입하고 있었으며, 모두 다양한 형태의 사보험 즉 민간보험에 가입돼 있었다. ‘Amalgamated Insurance’는 치과보험을 새로 시작한 회사라 필자는 일반직원들이 1차 심사를 한 내용을 다시 확인하는 업무를 치과대학 졸업반인 미국인 학생 몇 명과 함께 했다. 심사 업무는 현재 우리나라 심평원에서 하는 복잡한 심사과정과는 달리 매우 단순한 작업이라 큰 부담은 없었다. 보험청구는 진료기록부 사본으로 가름했으며 심사도 대부분의 경우 진료기록부 검토만으로 처리했다.


보험회사에서 부담하는 진료 내용으로는 구강검진(방사선 촬영포함), Prophylaxis, 응급진료, 충전(Amalgam, Silicate cement filling, Plastic filling, Gold inlay), 근관치료, 발치, 골절, Crown & Bridge, Partial & Full Denture, 소아에서는 Space maintainer가 포함됐다. 당시의 수가를 살펴보면 근관치료(단근) 전 과정 $45, 아말감충전(1면) $5, 금 인레이 $11(아말감 3면과 동일한수가 까지만 보상), 주조금관 $60, 발치(마취 포함) $5, 매복발치 $15, Partial denture $110, 총의치 $135 이었다. 몇 개의 치아에 근관치료를 하거나 틀니 3악이면 한 학기 등록금과 맞먹는 수준이다. 이에 대한 보험료는 1주일 당 부담해야 하며, 그 액수는 다음과 같았다. 가입자 본인: $5.30, 배우자포함: $6.80, 배우자 및 자녀포함: $8.50


눈여겨 볼 내용 중 하나가 초진과 이후 2년 간격으로 인정하는 검진비 항목으로 14매의 치근단촬영과 4매의 교익촬영을 포함한 경우의 수가($10)만 있었으며, 6개월마다 시행하는 정기검진에는 4매의 교익촬영을 포함한 수가($4)만 있었다. 즉 방사선 촬영없는 검진을 인정하는 항목은 없었던 것이다. 아마도 미국 치과계의 정서는 구강 건강을 위해서는 정기검진과 이를 통한 질환의 조기 발견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찍이 인지한 것이라 여겨진다. 다만 급여 항목에 치주치료 항목과 교정치료 항목이 없었으나 다른 치과보험에서는 인정 항목에 포함된 경우도 있었다.


며칠 전에 본 미국 영화 ‘식코’에서는 건강보험제도에 관한한 이웃인 캐나다, 프랑스, 영국, 독일 심지어 쿠바까지도 마치 천국처럼 묘사하면서, 미국의 건강보험 제도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었다. 3억 인구 중에 보험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이가 5천만 명이나 되며, 선진국 중에서 가장 문제가 많은 나라가 미국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언젠가 들었던 ‘미국에서는 자기 일거리를 가장 열심히 줄이는 희한한 직업으로 단연 치과의사를 꼽는다’는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이는 분명히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