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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문혁수 교수가 대한민국 치과계에 남긴 발자취를 따라가며

기고

지난 10월 14일 문혁수 전 서울대학교 교수께서 향년 66세로 타계하셨다.

‘만약’이라는 가정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한없이 의미 없는 생각일 뿐이란 것을 알게 되지만, 마음 한켠에는 미련으로 남게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치과계와 구강보건학계에는 아직도 미련으로 남아있는 ‘만약’이라는 아쉬움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만약 문혁수  교수가 왕성하게 계속 활동했더라면’이라는 가정은 그를 기억하는 사람도, 기억하지 못하고 현실의 어려움을 맞닥뜨리는 후배들도 아직까지 되뇌이는 아련한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문 교수는 1987년부터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에서 교직을 시작하면서 우리나라 치과계에 길이 남을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렇기에 2001년 투병이 시작된 이후, 많은 후학들은 문 교수의 부재를 안타까워하면서 그의 노력과 역량에 미치지 못함을 한스러워하고 있다.

문 교수는 대학교수로서 단순히 교육이나 연구 업적 뿐만 아니라, 스스로 검증한 과학적인 근거가 실제로 치과계에 활용되도록 부단히 노력한 바 있다. 이에 국민의 구강보건과 21세기 대한민국의 치과의료와 구강보건사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여러 업적 중에 주요한 몇 가지를 소개하면서 그의 업적을 기리고자 한다.


구강보건통계학을 주요 학문의 영역으로 발전시키다

의학통계학은 현대 의학과 의학 연구 발전에 꼭 필요한 학문으로 서서히 발전하고 있었으나, 치의학 분야에서는 다른 임상의학 연구에 밀려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떨어졌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다보니 치의학 분야에서 의학 통계는 방법론이나 연구설계 부분이 의학 분야에 비해 상당히 뒤쳐져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문 교수는 치의학 분야에서 의학 통계학의 중요성을 일찍이 인식하고, 치의학 교수로는 최초로 의학 통계를 전문적으로 전공하여 치의학 연구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용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단순히 의학통계학이라는 학문에 능통했던 것만이 아니라, 치의학 연구에 맞게 활용할 수 있도록 응용하였다는 점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문 교수 등이 저술한 ‘구강보건통계학’은 치의학 연구분야에서 활용되는 다양한 연구방법과 구강건강을 측정하여 지표를 산출하는 방법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한 책이 되었다. 후학들이 각종 연구에 활용하는 구강보건통계학이 현재와 같이 확산된 것은 바로 문 교수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고 보아도 무방하다고 하겠다.


현대적인 국가 구강보건사업의 기틀을 마련하다

1990년대 초반, 격오지 주민을 위한 치과진료가 업무의 거의 전부였던 지역사회의 보건소와 보건지소에 ‘구강보건’이라는 새로운 시도가 시작되었다. 보건소에 치과위생사가 배치되고 ‘치과실’에서 ‘구강보건실’로 점차 발전하면서 공중보건 치과의사를 중심으로 구강보건사업을 도입하여 수행되기 시작된 것도 이 즈음이다.

문 교수는 예방치과학 교과서에만 볼 수 있었던 다양한 구강질환 예방사업들이 지역사회에서 본격적으로 활용되도록 독려하고 보건복지부, 지방자치단체, 공보의 협의회와 지속적으로 협력하여 실제 사업이 수행되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하였다. 이 당시 공중보건의였던 많은 치과의사들이 문 교수가 구강보건사업을 시행중인 지역을 직접 찾아다니며, 사업을 꼼꼼하게 챙겼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현재 지역사회에서 활발하게 진행중인 다양한 구강보건사업의 시작은 바로 문 교수의 이러한 노력을 통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2000년 치과계에는 역사적인 구강보건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도록 하기 위해, 국가 구강건강에 대한 다양한 자료를 생산하고 법안의 구성을 자문하고 지원했던 일도 문 교수의 공이 컸다고 할 수 있다. 2002년 제1차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 중 구강보건 분야를 총괄하며 중앙정부의 구강보건 정책과 사업의 밑그림을 그린 것은 빼놓을 수 없는 업적이다.

세계적 수준에 맞는 국가 구강건강지표를 생산하다

국가에서 구강보건사업을 실행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그 나라 국민의 구강건강실태를 파악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970년대부터 5년 간격으로 구강건강실태조사를 실시하였지만, 국가 주도로 이루어지기 보다는 학계에서 회사의 후원을 받아 시행되었고, 그 규모도 작아 국가의 대푯값으로 인정받기에는 모자란 감이 없지 않았다.

문 교수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2000년 보건복지부의 사업으로 ‘국민구강건강 실태조사’를 준비하여 실시하였다. 이 당시에는 국가 주도의 전국적인 구강건강실태조사의 경험이 전무하였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의 외부 전문가와 함께 사업을 설계하고, 대한구강보건학회장을 역임하면서 전국의 예방치과학 전공 교수 및 대학원생을 이끌며 교육훈련 부터 출장조사에 이르기까지 구강건강실태조사가 체계적으로 진행되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세계보건기구와 OECD의 공식 통계기준에 맞도록 조    사방법과 표본 추출 및 지표 산출까지의 과정을 세계적인 수준에 맞추어 진행할 수 있었던 것도 문 교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치과대학 교수로 살아가면서 우리 국민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이번 조사를 통해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라고 말씀한 어떤 대학교수처럼, 연구실과 사무실에서만 생각했었던 국민의 구강건강상태를 직접 생생하게 목격하고 어떠한 구강보건사업이 필요한 지를 깨닫게 해준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지금의 국민구강건강실태조사는 문 교수가 조사단장을 했었던 2000년 보다는 좀 더 개선된 형태로 발전되었지만, ‘2015년 우리나라 12세 아동의 평균 우식경험영구치지수는 1.9’라는 국가 통계지표를 산출하는 현대적인 구강건강실태조사의 시작은 바로 문 교수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



과학적 근거로 수돗물불소농도조정사업을 추진하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구강보건사업이라고 하면 수돗물불소농도조정사업을 들 수 있다. 이 사업은 1980년대부터 시범적으로 실시되어 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자치단체별로 도입하게 된다. 수돗물불소농도조정사업에 대한 효과와 안전성은 외국의 수많은 연구결과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그 효과를 검증할 필요성이 점차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문 교수는 청주, 성남, 충주 지역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역학 조사를 통해 치아우식증 예방 효과를 입증하였고, 의과대학 예방의학 교수와의 협업으로 반대론자들이 주장하던 암 및 골절의 위험이 전혀 나타나지 않음을 밝혀내어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확실한 근거를 확립하였다. 90년대 후반에 수 차례에 걸쳐 미국 질병관리본부(CDC)와의 교류협력 프로그램을 이끌며 정수장의 불소투입 시설과 장비를 표준화하고 현장 실무자들의 역량을 실질적으로 강화시켰다.

수불사업 20주년이었던 2001년에 기념 조직위원회를 이끌며 정부와 학계는 물론이고 대표적인 노동·농민·시민단체의 지지를 확보하는 데에도 앞장섰다. 이후에도 수돗불소농도조정사업지원단을 통해 사업의 진행을 적극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모든 보건소 및 정수장과 일일이 소통하며 사업이 지속되도록 부단히 노력한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문 교수의 투병 이후 안타깝게도 수돗물불소농도조정사업은 점차 축소되고 있고, 보건복지부의 구강건강 전담부서가 사라지면서 신규 사업은 거의 없는 상태이다. 후배와 제자들의 능력과 노력이 부족함을 절실히 느껴진다.

우리나라 최초의 구강건강 코호트 연구를 진행하다

후학들에게 구강보건사업 만큼이나 기억에 남는 연구는 연천군에서 진행된 우리나라 최초의 구강건강 코호트 연구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연천군 보건소와 함께 연천군 모든 초등학교의 한 개 학년을 대상으로 구강건강 및 성장 발육을 추적 조사한 이 사업은 초등학교 학생의 구강건강 변화와 성장 발육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조사 사업이 될 수도 있었다. 단순히 구강검사를 진행한 것이 아니라 상하악 모형 채득, 두부 방사선 사진촬영, 그리고 키와 몸무게까지 지금도 하기 힘든 대규모의 코호트를 구축하여 아직까지 확립되지 않은 전신의 성장과 구강건강에 관한 많은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소중한 기회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쓰러짐으로 인하여 해당 코호트 연구의 결실이 약화됨으로써 사업을 경험했던 많은 후학들은 소중한 기회를 잃은 아쉬움만 남긴 채 이후 다른 방법으로 이어갈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산업구강보건의 학문적 발전을 도모하다

주로 제조업 사업장에 근무하는 노동자에게서 발생하는 직업성 구강질환에 대한 관심은 1970년대 이후 조금씩 증가하였다. 이후 법정 직업병으로 ‘직업성 치아부식증’이 지정된 이후 산업구강보건의 관심은 직업병 뿐만 아니라 직장 구강검진과 같은 노동자의 기본적인 구강건강관리의 영역까지 확대되었다. 1995년에 직장 구강검진이 일반 구강검진으로 확대되는 과정에 전문적 자문역을 맡았고 특정 사업장에 구강보건실을 설치하여 현실 적용 가능한 사업장 프로그램 개발에 앞장서기도 하였다. 문 교수는 1997년 설립된 사단법인 한국산업구강보건원의 임원으로 활동하면서 산업구강보건의 영역을 넓히고, 노동부, 근로복지공단 등에 직업성 치아부식증의 특수구강검진 유지와 사업장 구강검진사업이 활성화되도록 부단히 노력하였다. 특히 2000년 3월부터 한국산업구강보건원 이사장을 역임하면서 이러한 다양한 노력이 결실을 맺도록 공들여 활동한 바 있어 그의 부재가 더욱 안타깝게 느껴질 뿐이다.

이제 ‘만약 문혁수 교수가 지금까지 우리 곁에 생생하게 있었다면’ 이라는 아쉬움은 후배와 제자의 몫이 되었다. 그가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절에 주위 분들은 ‘이제 고마 힘든 일은 넘기시고, 좀 편안하게 사이소’라고 문 교수에게 권하곤 하였다. 한참 절정으로 활동하던 시기에 투병을 시작하여 이제는 고인이 되신 문 교수는 아마도 편안했던 시절은 겪지 못한 채 아쉬움 만을 남기고 가족과 제자, 후배와 치과계를 떠나게 되었으리라. 이제라도 편안하게 어깨에 짊어진 짐을 벗으시기를 바라면서 고인의 명복을 비는 바이다.

이 글은 부산대학교 김진범 교수, 강릉원주대학교 마득상 교수, 박덕영 교수, 정세환 교수의 도움을 얻어 완성하였다. 지면으로 나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이병진 콩세알튼튼예방치과의원 원장